
◆ 내종석 편집국장
개관사정[蓋棺事定]은 원래 관의 뚜껑을 덮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뜻으로, 1300년 전 중국 당나라 시인 杜甫(두보)가 四川省(사천성) 동쪽 夔州(기주)의 깊은 산골로 落魄(낙백)해 살고 있을 때 역시 거기에 와서 살며 失意(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던 친구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 형식의 시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길가에 버려진 못을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앞서 꺾어 넘어진 오동나무를 백 년 뒤 죽은 나무가 거문고로 쓰이게 되고 한 섬 오랜 물은 蛟龍(교룡)을 품기도 했다. 장부는 관을 덮어야 일이 비로소 결정된다. 그대는 아직 다행히 늙지 않았거늘 어찌 원망하리요, 초췌히 산 속에 있는 것을 심산궁곡은 살 곳이 못 된다. 벼락과 도깨비에 미친 듯 사나운 바람이 겸하였음에랴.
김영삼 전 대통령이 26일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국가장에는 수많은 추모 인파가 몰려 그의 마지막을 같이했다.
떠나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수많은 시민들이 민주화에 헌신했던 그의 궤적을 되새기며 애도했다.
주요 신문들은 사설을 통해 “고인은 떠났지만 그의 정신은 남았다”며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 독재와 투쟁하면서도 국회를 포기하지 않았던 의회주의 정신, 정치라이벌과 싸우면서도 협력했던 통 큰 정치는 영원한 귀감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김영삼 전 대통령'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민주주의/민주화 운동'(21%), 'IMF'(17%), '금융실명제'(16%) 세 가지가 전체 응답의 54%를 차지했고 그 다음으로는 '문민정부'(3%), '3당 합당'(2%), '하나회 척결'(2%)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우리나라 정치 발전 공헌 정도에 대해서는 국민 74%가 '공헌했다'고 평가했다한다. 부정적 견해가 우세했던 생전의 평가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그렇다면 예상을 뛰어넘은 추모 열기와 긍정적 재평가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은 극단적 당파주의로 치닫는 현실정치에 대한 환멸일 것이다.
지난 11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은 예정에도 없던 국무회의를 자청한 자리에서 11·14 민중총궐기 대회를 "불법 폭력 사태"라 비난하며 "복면 시위는 못 하도록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 대통령은 더 나아가 "IS(이슬람국가)도 지금 얼굴을 감추고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교사와 역사학자들이 평생을 고민해야 하는 역사 해석 문제를 대통령의 아집 하나로 '국정화'로 몰고 갔고, 이제는 법학자와 언론학자들이 심사숙고해야 하는 '익명성과 표현의 자유'라는 어려운 주제 '복면 금지'를 말씀 한마디에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말씀이 곧 법이 되는 시대니 놀랄 일도 아니다. 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일궈낸 고인의 업적이 다시 조명을 받는 대목이다.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관 뚜껑을 덮고 대못을 칠 것인지 다시 한번 기회를 줄 것인지 생각할 시간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초선 윤후덕 의원과 3선 황진하 의원은 국민의 대표로서 우리 가슴에 어떠한 감동을 주었는가? 그들은 거대 담론 통일을 말해본 바 있었던가? 아니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작은 몸짓이라도 있었던가?
물론 자잘한 예산확보, 민원해결 타령 할 수도 있다. 기대가 커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이 걸었던 굵고 치열한 궤적은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는다. 윤의원은 운정지역 초등학교 앞에서 교통정리한 것만, 황의원은 문산지역 마을 곳곳에 지하벙커 설치한 기억만 뇌리에 선명하다.
42년간 총리로 재임하면서 스웨덴 역사상 가장 유능한 총리로 평가받는 17세기 악셀 욱센화나(Axel Oxenstierna) 백작은 죽을 때 이런 유언을 남겼다한다. ‘내 아들아! 얼마나 하찮은 자들이 이 세상을 다스리는지 똑똑히 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