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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유령이 전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당시 한창 맹위를 떨치던 자본주의에 대한 의문을 품었습니다. ‘왜 가난한 사람은 항상 가난한 걸까?’ ‘자본주의는 정말 이상적인 체제일까?’
그렇듯 제 마음속에도 ‘하나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음울하고 불길한 예감일 뿐입니다. '왜 가난한 사람은 항상 가난한 걸까?' 이 의문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자본주의는 정말 이상적인 체제일까? 이 의문 역시도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자본주의 논쟁’을 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비슷하게 ‘왜 약자는 항상 약자일까?’라는 의문을 가집니다. 거기다가 ‘우리나라는 지금 민주주의 체제가 맞나?’라는 근본적인 의문까지 추가됩니다. 우리는 과거 왕조시대의 수많은 ’약자‘들, 이른바 백성들에서 모름지기 ’국민‘이라고 지칭되는 지금까지 ’약자‘가 ’강자‘가 되는 역사를 한 번도 본 일이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고 노무현 대통령은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 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어요.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라고 피를 토했습니다. 일본에 빌붙어서 제나라 민족을 탄압하고 능멸하며, 짓눌렀던 일제의 주구(走狗)들이 해방 이후까지 그 세를 잃지 않고 떵떵거리며 ‘아랫것’들을 멸시하면서 사는 것이 현실입니다. 군사 쿠데타를 하고도 대통령이 되고, 천수를 누리는 것이 우리나라 ‘대한민국’입니다. 그들 스스로 부끄러운 역사를 왜곡하고 진실을 폄하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우리나라’입니다. 그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 나라입니다. IMF당시에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고금리에 서민들 등골이 휘어도 상대적 혜택을 누리던 자들이 “이대로”를 술자리에서 외쳤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우리는 천박하고 비루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지금 민주주의 체제가 맞아요?’ 국민들이 ‘투표’를 해서 ‘권력’을 ‘선출’ 하는 것이니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가 맞습니다.
그러나 그 ‘절차’나 ‘과정’이나 ‘결과’가 ‘민주적’입니까?
최근에 있었던 각 정당들의 공천을 돌아보면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라는 것을 감히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체면이고 도리도 할 것 없이, 진흙탕에서 벌이는 개싸움에 다름 아닙니다. 이러면서 우리가 자유를 말하고, 민주를 말하고, 정의를 말할 수 있을까요?
절대군주 같은 권력자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오로지 ‘죽음’입니다.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그 결과를 승복하는 민주주의의 아름다움은 이제 ‘꿈’일 뿐입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우리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하지 못할 것입니다. ‘자본’과 ‘기득권’에 억눌려서, 그 알량한 ‘지역감정’이나 학연, 지연에 얽매어서 우리는 우리 손으로 민주주의를 목 졸라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아니면 ‘그놈이 그놈이지.’ 하면서 의무를 방기하는 사이에 ‘가장 나쁜 놈’들이 나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흔히 투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투표만으로’ 우리 삶이 변하지 않습니다. 해방 이후 우리는 수없이 많은 투표를 해왔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누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형식적 민주주의는 완성됐다.”라고 말입니다. “지금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