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종석 편집국장 |
일견폐형[一犬吠形] 一:한 일 犬:개 견 吠:짖을 폐 形:모양 형
누가 개개인 혼의 정상과 비정상을 구별하며, 누가 개개인의 진정성을 판단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부터 졸지에 혼이 비정상인 백성이 되어버렸다.
일견폐형 백견폐성 (一犬吠形 百犬吠聲)은 한 마리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모든 개는 소리만 듣고 짖는다는 뜻이다. 한 사람이 있지도 않은 일을 있는 것처럼 퍼뜨리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사실인 양 따라서 떠들어 대는 것을 비유해서 하는 말로, 중국 후한(後漢) 말기의 사상가왕부(王符)의 《잠부론(潛夫論)》 〈현난편〉에 나오는 말이다.
“천하를 제대로 다스릴 수 없는 것은 현난(賢難)에 있다. 현난이란 어진 사람을 얻기 어려운 것을 말한다. 어진 사람의 언행이 속된 사람의 질투를 받아 용납되지 않을 때, 천자는 이 속된 말에 현혹되지 말고 지혜롭게 가려내야 한다. 속담에 말하기를, 개 한 마리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모든 개가 따라 짖는다고 하였다. 한 사람이 헛된 말을 전하면 많은 사람은 이것이 사실인줄 알고 전한다. 세상에 이 같은 병은 오래된 것이다[諺曰 一犬吠形 百犬吠聲 一人傳虛 萬人傳實 世之疾 此因久矣哉].”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국무회의에서 "현재 7종 교과서에 가장 문제가 있는 근현대사 분야 집필진 대부분이 전교조를 비롯, 특정이념에 경도돼 있다"고 말하면서,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생각하면 참으로 무서운 일"이라며 한국사 국정교과서 추진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서 국민을 위해서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도 했다.
‘진실한 사람들’만 선택받게 해달라는 총선 국민심판 론을 제기했고, 비정상 혼의 정상화를 꺼내들고 국사교과서 국정화의 정당성을 주장한 것이다.
사실 “2005년 1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한나라당 대표로 연두기자회견에서 “어떤 경우든 역사를 정권이 재단해서는 안 된다. 정권의 입맛에 맞게 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었다. 그랬던 분이 10년 만에 자신의 발언을 정면으로 뒤집고 정권 스스로 나서 한국역사 국정화 추진을 서두르고 있다. 딱 잘라 이율배반적이다. 일본 사이타마(埼玉)학원대 일본사 연구자인 후쿠토 사나에(服藤早苗) 명예교수는 “한국 교과서 국정화를 보면 태평양전쟁 이전 일본이 떠오른다.”고 하면서, “교과서에까지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절대로 안된다”, “국정화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편협한 역사관을 심어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이명박 정부에서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정옥자 서울대명예교수와 박근혜 정부 1년차까지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까지 국정화에 반대했다. 정녕 이들도 좌익학자로 규정할 것인지 정부에 묻고 싶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왈왈됐다.
황교안 총리 "전국 2,300여개 고등학교 중 3개 학교만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했고, 나머지 99.9%가 좌편향 교과서를 선택했다"는 말을 했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 싸움에 지면 우리나라가 망한다”며 “국내 좌파와의 싸움에서 점잔을 떤다고 진다면 북한 놈들이 어떻게 보겠느냐”며 화답했으며, 이정현 최고위원은 "국정화를 반대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라는 막말로 대통령께 혼을 바쳤다. 파주 을지역구 황진하 의원 또한 “대한민국 부정하는 역사교과서 바로 잡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어 응답했다.
대통령 취임 초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조하며 말씀하셨던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진돗개정신 발휘” 주문에 충실하게 짖어대는 모습들이다.
누가 개개인 혼의 정상과 비정상을 구별하며, 누가 개개인의 진정성을 판단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부터 졸지에 혼이 비정상인 백성이 되어버렸다.
진돗개정신이 결여돼서 그런지 대통령의 ‘비정상 혼의 정상화’주술(呪術)과 ‘진실한 사람들’만 선택받게 해달라는 주문(注文)을 나는 도통 모르겠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혼의 모습 한 가지는 알고 있다. 박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 유승민의원 부친상 빈소에 ‘근조화환’조차 보내지 않은 박대통령의 협량(狹量).
후한 말 왕부는 근거 없는 말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당시의 사회상을 “한 마리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모든 개는 소리만 듣고 짖는다.”며 질타했다. 이럴 때 “각하! 이의 있습니다.”라며 오른 손 번쩍 치켜드는 현자(賢者)는 어디 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