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현 대표
비 내린 후라 그런지 옷깃을 스치는 바람이 스산합니다. 바람이 불때마다 후두둑하고 나뭇잎들이 흩날립니다. 보도를 덮고 있는 나뭇잎들에서는 이미 지난여름의 푸르름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한 해가 또 가고 있습니다.
어느 한 해, 한 순간 일이 없었던 때가 없었지만 요즘처럼 스산한 때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교과서 문제로 나라가 온통 시끄럽고, 경제는 점점 퇴보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처지는 시간이 갈수록 궁박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가 문제라고 합니다. 일각의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운 것은 일시적이 아니고 구조적이고 향후 나아질 전망이 별로 없다고 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을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의 총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주체들 간의 차별은 이미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합니다. 그런 차별의 결과로 인해 사람들이 소비에 사용할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하고 있고,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돈을 안 쓴다는 것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무망하니 번 돈을 움켜쥐고 있을 수밖에요.
똑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받는 돈이 3배가 넘는다고 하면 그 사회의 분위기는 싸늘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에 대한 의욕이 생겨날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사회를 원망하고, 세대를 원망할 밖에요. 오죽하면 ‘헬 조선’이라는 듣기 민망한 말이 유행할까요. 이러한 경제주체 간의 차별문제나 경제의 구조를 결정하는 일은 경제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치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정치권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생색내기용 발언은 넘쳐나지만 문제를 해결하고자하는 의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야당의 ‘을지로 위원회’같은 기구도 출발할 당시의 결기는 찾아볼 수도 없습니다. 소수 정당인 진보정당에서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한마디로 역부족입니다. 정치의 근본은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한다면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는 것입니다. 차별받는 경제주체들 즉 비정규직이나 계약 노동자들은 국민들이 아닌가요?
왜 그들의 삶에 대해서, 그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 외면합니까. 차별이 우리나라 전체의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면 우리나라 정치는 우리나라 전체국민들의 삶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언제까지 이런 정치를 참아야하나요? 심하게 말하자면 진작에 판을 갈아엎었어야 했습니다. 국민들의 삶을 외면하는 정치가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국민들의 눈에서 나는 피눈물의 총량이 오로지 자신들의 가슴에 달린 뱃지보다 가볍다고 느끼는 그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주어야할 지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투표용지 한 장의 무게가 벽돌보다 무겁다는 것을 철저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지금 나라 밖에서는 정치의 근본을 바꾸려는 시도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선주자 버니 샌더스, 영국의 노동당 당수인 제레미 코빈, 캐나다의 새로운 총리 트뤼도가 그렇습니다. 일부에서 보기에는 급진주의자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처한 고민과 문제해결을 위한 새로운 방안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문제를 우회적으로 개량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정면대결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정치도 그래야 합니다. 재벌들에게 비굴하게 아부하면서 입으로는 노동자들의 삶을 걱정하는 이중적인 태도로는 절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국민들의 삶을 위해서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치열하게 싸우는 정치인이 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버니 샌더스, 제레미 코빈, 트뤼도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