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장종국의 생태와 문학이야기 ①
경의선 까마귀
장종국 시인
78년 시집<들꽃>으로 데뷔.
<경의선문학>편집인 및 주간, 칼럼니스트
시집 날마다 허물고 있는 집 외 4권 상재
中國語詩集 詩人과 孤島(中國和平出版社)
경기도 문학상 외 다수
낮잠이라도 자고 싶은 나른한 토요일, 경의선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있었다.
일산역을 스쳐 지나면서 ‘아뿔싸’ 내려야 할 역을 잊고 지나쳐버렸다. 당황 할수록 생각의 꼬리가 끝없이 이어지면서 괜한 짜증이 난다. 내가 무엇 때문에 열차에 올랐는지 어디로 가는지 목적지를 망실하였다.
금촌역에 내려야 된다는 사실을, 풍산 역에서야 다달 아서야 깨달았다. 나는 허겁지겁 문산 행 열차를 바꿔 타고 다시 금촌역에서 하차하였다. 이런 현상을 건망증 아니면 치매현상일까? 이렇게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부끄러운 나의 일시적 망각증세를 지인에게 이야기 하였더니 “까마귀고기 먹었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나는 ‘경의선까마귀’가 되었다.
이제부터 까마귀는 나의 친구가 되었다. 왜 까마귀고기를 먹으면 기억력이 떨어지는지 궁금하여 까마귀에 대하여 알고 싶었다. 그런데 그 흔하디흔한 까마귀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희귀조가 되어 가고 있다.
까마귀(Corvus corone)는 참새목 까마귀과 까마귀속에 속하는 새로서 3,4월에 알을 품는다. 우리나라 전 지역에 걸
쳐 서식하는 흔한 텃새이다. 세계적으로는 유럽, 유라시아 대륙, 한국, 일본 등지에 서식한다. Corvus는 라틴어 comix에서, corone는 그리스 어 korone에서 유래된 것으로 둘 다 까마귀를 뜻한다. 영어식 이름은 Carrion Crow인데 여기서 Carrion은 ‘썩은 고기’를 뜻하며 Crow는 ‘까마귀류’를 뜻하는 말로서 까마귀가 썩은 고기를 먹는 것과 관계가 있다.
까마귀의 이미지는 길흉의 양면성을 띄고 있다.
까마귀가 봄에 새끼를 치는 숫자에 따라서 농사가 잘될 것인지 아닌지를 예측하기도 한다. 새끼를 하나만 치는 해에는 가뭄이 들고, 둘을 치면 풍년이 들고, 셋을 치면 홍수가 난다고 한다. 그리고 농사를 칠 때 까마귀가 오면 농사가 잘된다고 한다. 이는 농사를 시작할 때 벌레를 잡아먹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일반적으로 우리 민족은 까마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특히 까마귀 울음소리는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침에 울면 아이가 죽을 징조이고, 낮에 울면 젊은이가 죽을 징조이고, 초저녁에 울면 화재를 달할 징조이고, 밤중에 울면 역적이나 살인이 날 징조라고 믿었다.
또 지붕 용마루에서 울면 높은 사람이 죽을 징조이고, 중간 지붕에서 울면 중간 사람이 죽을 징조이고, 처마에서 울면 하인이 죽을 징조라 전해지고 있다.
여러 마리가 무리지어 울면 양식 없는 집에 손님이 찾아 올징조이며, 서쪽을 바라보고 울면 나쁜 기별이 올 징조라고 한다. 이렇게 옛사람들은 많은 이미지를 그려 넣기도 하였고 많은 문학작품에 등장한다.
삼국유사에 그 이름이 까마귀를 뜻하는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부부의 설화가 있다.
“신라 8대 아달라왕(阿達羅王)4년에 이 부부는 동해 바닷가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연오는 바닷가에서 마름을 따던 중 바위에 실려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되었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찾으러 바닷가에 나간 세오는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서 왕비가 되었다.
이 무렵 신라에서 해와 달이 빛을 잃어 온 세상이 캄캄했다. 해와 달의 정(精)인 연오와 세오가 일본으로 건너갔기 때문이다.
왕은 일본으로 사신을 보내 두 사람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연오는 하늘의 뜻으로 자신이 이곳의 왕이 된 것이니 돌아갈 수 없다고 전한다.
그 대신 해와 달이 정기를 모아 세오가 짠 비단을 주었다.
영일만 언덕에 제단을 만들고 그 비단을 제물로 제사를 올리니 과연 해와 달이 전과 같이 비춰줬다.”
-<삼국유사> 권1 연오랑세오녀 중에서
‘까마귀 목욕’이란 말이 있다. 이는 까마귀가 수욕(水浴)을 순식간에 끝내는 데서 유래한 말로서 물에 몸만 담것다가 곧바로 나와 목욕을 끝내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목욕을 싫어하는 나의 빠른 목욕방법과 일치한다. 새에게는 깃털이 매우 중요하다. 깃털의 오물이나 노폐물을 제거하거나 기생충을 제거하여 항상 청결을 유지하여야 한다.
김춘수 시인은 이중섭의 ‘달과 까마귀’ 그림을 보고 <이중섭4>를 노래하였다.
여기에서 까마귀는 가족들에게 날아가고 싶은 희망을 표현함과 동시에 한편으로 까마귀의 불길한 이미지가 절망적
인 그리움에 몸부림치는 이중섭의 황폐한 심정을 대변해 주고 있다. 푸른색바탕에 누렇게 그린 둥근달에 5마리의 검은색 까마귀와 3가닥의 전깃줄이 그려진 그림이다.
“저무는 하늘
동짓달 서리 묻은 하늘을
아내의 신발신고
저승으로 가는 까마귀,
까마귀는
남포동 어디선가 그만
까욱하고 한 번만 울어 버린다.
오륙도를 바라보는 아이들은
돌팔매질을 한다.
저무는 바다
돌 하나 머리멀리
아내의 머리 위에 떨어지거라.”
-김춘수<달과 까마귀>전문
“예로부터 까마귀는 효도를 하는 새로 알려져 있다.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말이 있다.
까마귀는 새끼가 다 자란 뒤에는 어미 새에게 공양한다는 이야기인데 까마귀와 같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새까지도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듯이 사람도 마땅히 효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우화이다.
실제로 까마귀의 생태를 보면, 어린까마귀가 태어난 뒤에 처음에는 수컷 어미 새가 먹이를 가지고 오지만 조금 지나면 수컷과 암컷 모두가 먹이를 물어다 준다. 이때 먹이는 목 부분에 넣어가지고 오는데, 그 뒤에 둥지를 떠나 어미 새의 보호 속에서 생활하는 어린까마귀는 둥지를 떠날 때 몸집이 꽤나 어미만큼 커있다. 그런데 이러한 장면을 어린새끼가 어미에게 먹이는 것으로 착각하여 까마귀가 효도하는 새라고 착오를 일으킨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조 박효관(박효관 1800~1880?)의 시조에 반포보은(反哺報恩)이란 시 구절이 있다.
뉘라서 까마귀를 검다 흉타 하돗던고
반포보은이 그 아니 아름다운가
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퍼하노라
그러므로 까마귀를 우리 조상들은 효조(孝鳥)라 하였으며 오(烏), 한아(寒鴉), 자오(慈烏), 가마귀, 가마괴, 가막이 등으로 불렀다.
까마귀는 현명한 새로 알려져 있다. 뛰어난 기억력, 먹이의 처리, 비축방법, 위험으로부터 도피방법 등 남다른 점이 많다. 까마귀가 호두를 물고 높이 비상하였다가 바위나 아스팔트에 떨어뜨려 속 알맹이를 주워 먹는 지능 높은 새이다.
소설 속의 이야기 하나
이태준의 단편소설 <까마귀>를 읽으면, 까마귀에 대한 인간의 두 가지 속설을 잘 구사한 작품이다. 친구 별장에서 글을 쓰는 작가와 별장 연당 앞 잔디밭을 산책하는 폐병에 걸린 이름 모를 미모의 아가씨와의 짧은 만남에서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그는 누워 너무나 고요한 귀를 빼앗기면서 옛사람들의 얼굴을 그려보다가 너무나 가까운데서 까악! 까악! 하는 까
마귀소리에 얼른 일어나 문을 열었다… 바로 전나무 썩정 가지에 시커먼 세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그러는 것이었다.”
“까마귀!” 까치나 비둘기를 본 것만은 못하였다. 그러나 자연이 준 그의 검음과 그의 탁한 음성을 까닭 없이 저주할
필요는 느끼지 않았다.”
“지금은요…?” “무서와졌예요. 죽음도 첨에는 퍽 아름다운 걸로 알았드랬예요. 언제든지 살다 귀찮으면 꽃밭에 뛰어들 듯 언제나 아름다운 죽음에 뛰어둘 수 있는 걸 기뻐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닥뜨리고 보니 겁이 자꾸 나요. 꿈을 꿔두….”
“하는데 까악까악 하는 소리가 바로 전나무 썩정 가지에서인 듯, 언제나 똑같은 거리에서 울려왔다.”
“여기 나와선 까마귀가 내 친구입니다.” “선생님은 친구라구꺼정! 전 이 동네가 모두 좋은데 저게 싫어요. 죽음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구 자꾸 깨쳐주는 것 같아요.”
작가는 이 여인을 사랑하리라 마음먹고 있던 어느 날, “우리 정자로 늘 오던 아가씨가 갔답니다.” “그는 영구차를 향하여 모자를 벗었다.” 망각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망각이 때론 삶의 필요소가 되기도 한다. 까마귀는 망각의
대변자가 된 뜻하다. 손바닥 꽁트(conte) 한 토막을 만들어 보았다.
까마귀효과(Carrion Crow effect)
반세기동안 변방으로 복잡한 형태의 행정구역으로 붙여진 지명이 있다. 도농복합도시, P읍에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었다.
휴전선철조망을 끼고 맞이하는 겨울은 여느 지방보다 시각적으로나 감각적으로 보다 더 추운 겨울이다. 엉성한 조립
식 공장건물 안 주물난로에서 조개탄이 벌겋게 타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토종의 입맛은 커피 맛에 길들어져 중독환자처럼 되었다. 오전 10시30분 커피타임, 일하기 싫은 핑계일지 모른다.
같은 마을에 사는 조립부 김 부장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기분이 좋으면 “형님”하고 부르고 기분이 언짢으면
“사장님”으로 칭한다.
오늘 아침엔 “형님”하고 부르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은가보다. 잠깐 할 말이 있단다. 경리 ‘미스 박’을 힐끗 쳐다보더니 밖으로 나가서 이야기 하잔다.
‘가불 아니면, 잔업하기 싫다는 이야기, 그게 아니면 월급올려 달라는 건의사항, 자못 부탁이라기보다 그만 두겠다는엄포에 가까운 말일까?’ 내심 궁금하던 차..
“형님! 실은 친척 중에 사할린동포가 있는데 이번 고향방문길에 선물을 가지고 왔는데 아주 귀한 겁니다.”
“뭔데?” 김 부장은 사방을 살피더니 귀엣말로 “형님! 정력에 끝내주는 <까마귀>고긴데요, 사할린 친척이 3마리나 가지고 왔습니다. 한마리만 사 잡수세요. 효과가 만점이래요.” 멈칫거리더니..
“우리나라 까마귀는 모두 잡아먹어 씨가 말랐데요.” 이런말은 금시초문이었다.
“얼만데.?” “3십만원만 주세요. 어? 3십만원 이라고? 가지고 올 선물이 없어서 소문에 까마귀가 인기품목이라 잡아왔데요.”
나는 보신주의자가 아니다. 아무리 좋다는 음식도 결국엔 먹어야 살 수 있는 한 끼의 거룩한 양식일 뿐이다. 모처럼 부탁한 일이라 망설이다 거절하였다. 김 부장은 멋 적게 답배만 깊숙이 들이마시며 작업현장으로 들어갔다. 까마귀가 정력에 좋다는 속설이 궁금하였다. 수소문 끝에 조립부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것도 모르세요. 까마귀고기를 먹고 잠자리하면 좀 전에 행하였던 행위를 까맣게 잊어버린다나요. 그래서 또 행위
를 하고, 또 하고, 그래서 좋은 고기랍니다.” “낄낄”
‘아! 아! 기막힌 발상이구나. 절묘한 메타포!’ 이것이 바로 망각도 삶의 활력소가 되는구나. 나는 이 효과를 “까마귀효과”라 명명한다.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 1737~1805)은 주옥같은 시와 산문을 많이 남겼다. 연암의 손을 거쳐 씌어 진 작품들은 한결 같이 신선한 매력을 풍긴다. 그는 마치 언어의 마술사와도 같이 어떠한 주제, 어떠한 종류의 글에도 생기를 불어 넣은 명문장을 남겼다.능양시집 서(菱洋詩集 序)에서 까마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신선하다. “본 것이 적은 자는 백로를 내세워 까마귀를 비웃고 오리를 내세워 학을 위태롭게 여긴다. 사물자체는 이상할 것이 없는데도 혼자서 화를 내고, 한 가지만 자기생각과 달라도 모든 사물을 무시한다.
아! 저 까마귀를 보라, 날개가 그보다 더 검은 것이 없긴하지만, 문득 뿌유스럼한 금빛이다가 다시 초록색으로 반짝
이기도 하고 햇빛이 비치면 붉은색으로 날아오르며 눈이 아물거리면 비취색으로 변한다. 그렇다면 내가 그것을 푸른 까마귀라 불러도 좋고 붉은 까마귀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저것은 본래 일정한 색깔이 없는데 내가 먼저 눈으로 일정한 색깔로 규정해 버린다. 눈으로만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고도 마음으로 먼저 규정해 버린다.”
이처럼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까마귀가 검은 것은 사실이지만 광선에 따라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도 사실
이다. ‘까마귀’는 검은 것‘이라는 인습적인 사고방식으로는 까마귀의 참모습을 인식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마치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들의 이론과 흡사하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주장은 사물을 보는 관점에서 사물의 입체감, 명암, 색채 등은 태양광선에 따라 매 순간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순간순간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네(Monet)가 그린 <루앙 성당> 연작 작품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김현승시인의 시에서, 존재의 전환을 통해 초월 지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미지로 까마귀를 자주등장 시킨다. 천상의 공간으로 비상하는 새라기보다는 인간과 가까이 살고 있고, 천상과 지상사이에서 시인의 갈등과 영혼의 구원을 위한 대리물로 등장한다.
“영혼의 새
매우 뛰어난 너와
깊이 겪어본 너는
또 다른
참으로 아름다운 것과
호올로 남은 것은
가까워질 수도 있는
언어는 본래
침묵으로부터 고귀하게 탄생한
열매는
꽃이었던
너와 내 조상들의 빛깔을 두르고
내가 12월의 빈들에 가늘게 서면
나의 마른 나뭇가지에 앉아
굳은 책임에 뿌리박힌
나의 나뭇가지에 호올로 앉아
저무는 하늘이라도 하늘이라도
멀뚱거리다가
벽에 부딛쳐
아, 영혼의 흙벽이라도 덤북 물고 있는 소리로,
까아욱---
깍---”
-김현승의<겨울 까마귀>전문
이렇게 까마귀는 전신의 검은 생김새와 울음소리로 인해 사람들과 이웃하고 살면서 부정적인 이미지 또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삶 속에 깊이자리 잡고 있는 조류다.
망각의 여정으로 인하여 까마귀와 나는 친구가 되었고 지면에 올리지 않은 많은 이야기를 찾아 간직하고 싶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