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집
예강 오순희
1998년 한국수필 등단
저서 수필집 <그대에게 노란 장미를> 출간
파주문학회동인지<작은글뜰> 1집~26집 공저
파주향토문화연구소 연구원
경기도해설사회지 편집 위원장
한국문인협회회원, 파주문학회회원, 한국수필작가회이사
얼마 전 ‘용상사’라는 절에 간 일이 있다. ‘용상사’는 고려 때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개성으로 쳐들어오자, 현종이 미복차림으로 이 마을로 피신해 와있던 곳으로, 현종이 개성으로 돌아간 후에 그것을 기념하여지었다고 하는 절이다. 가는 길에 물을 마시려고 절 마을에 있는 ‘찬우물’에 잠시 들렸다. 오래전부터 있던 이름 난 약수물이라 많은 사람들이 물을 떠가기도 하는 ‘찬 우물’의물은 달고 시원했다. 물을 마시고 돌아서다가 우물 근처에 새로 지은 집 옆으로 삐뚜름히 쓰러져 가는 집 한 채가 넘어갈 듯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오래 된 집을 발견했다.
울타리너머로 기웃이 들여다보다가, 문짝도 없는 빈 집으로 들어가 보니, 손바닥 만 한 마당에 풀이 무릎까지 올라오도록 우거져 발을 옮기기도 어려웠다. 마당과 마루에 남아서 나뒹구는 세간들이 바스라 질 듯 퇴락한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안방 부엌 아궁이는 시커먼 그을음으로 얼룩덜룩 하다. 아직도 연탄재가 들어있는 건넌방 연탄아궁이를 들여다보고, 뒤란까지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오며 어떤 사람들이 인생을 엮어가던 곳이었을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요즘은 도시는 물론 시골에도 높은 아파트가 여기저기 들어서서, 주위의 산들이 모두 가려지고 냇물과 하늘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시골집이라 해도 구조가 편리한 입식주택들이 대부분이다. 새로운 건축물은 크건 작건 사용하기 편하고 아름답게 변해 가지만, 그런 중에서도 오래된 집들이 더러 남아 있어서 지나다가 그런 집을 발견하면 반가움에 눈여겨보게 되고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진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이유 없이 들어가 보잘 수는 없으니, 더러는 겉모양만이라도 사진을 찍어 와 가끔씩 들여다보곤 한다. 사진 속 오래 된 집은 어릴 적에 살았던 동네가 보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입고 먹고 기거해야 하는데, 어느 것 한 가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전쟁 후 어려웠던 시절에 집을 가질 능력이 없던 사람들은 셋방살이를 하기도 하고, 더러 움 집을 짓고 사는 사람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 한 친구의 집은 개울 옆 둔덕을 이용해서 만든 움집이었다. 처음 그 친구 집에 갔을 때는 땅속에 집이 있는 것이 신기했다. 친구가 창피한지 주뼛거리며 데리고 들어 간 집은 창이 없어 어둠침침했다. 친구가 잡아끌었지만 한사코 기웃거리며 방을 들여다보았었다.
그 후 무악재에서 다시 움집을 보게 되었다. 그 때는 서울에서 파주를 오가는 버스정류장이 홍제동에 있었는데, 버스를 타러가는 무악재길 옆 산비탈에 굴이 있었다. 그 굴을 집 삼아 사람이 살고 있는데, 때때로 가마니로 만든 거적문을 들치고 드나드는 게 보였다. 그때 안쓰러운 마음을 가졌던 기억이 남아, 지금도 무악재를 지날 때면 거적문이 달려있던 자리가 저기쯤이었던가 하고 두리번거리게 된다.
오래된 집은 낡고 헌집만 있는 건 아니다. 역사의 인물들이 태어나고 살았던 고택을 잘 보전해 놓은 곳이 있고, 유배생활을 했거나 잠시 머물던 곳을 복원해 놓기도 하는데, 복원해 놓은 집은 옛집이 아니어서 자세히 보지 않고 그냥 돌아 나오게 된다. 외국여행을 하다 보면 음악가가 살던 집이라던가, 작가의 집이라고 해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작가가 살던 집과 쓰던 물건에서 그의 흔적을 찾는다. 집은 단지 생활의 공간만이 아니라, 그 집에서 살던 사람들의 추억이 켜켜이 쌓여 역사를 이루고, 생명이 이어져 내려오는 곳이 아닌가.
결혼하고 얼마 동안은 몇 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녔다.
아이들이 하나 둘 씩 태어나고 세간살이가 늘어나면서 추억도 쌓이게 마련인데, 이사를 하면 그 집에서 있었던 추억을 그냥 놔두고 가는 것처럼 늘 서운했다. 먼저 살던 집 앞을 지나갈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 눈에 띌세라 대문 틈을 기웃거리거나, 창문이 열리면 집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닫힌 창문을 바라보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아주 작은 그리움 한 조각이 비늘처럼 떨어져 내리며 가슴이 시렸다. 그 집에서 살았던 몇 년의 시간을 두고 온 듯, 한동안 그리워하며 예방주사 맞고 앓는 홍역처럼 약한 향수병을 앓곤 하였다.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집에서는 20여 년을 살았었다. 여러 번 수리하고 개조하여 살았지만 아파트처럼 편리하지 못했다. 불편한 점이 많고 단열이 잘 안돼서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웠다. 그래도 그 집에서 아이들이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녔고, 결혼을 하여 독립해 나갔다.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고 등단을 한 것도 그 집이었고, 늙을 때까지 함께 행복을 가꾸어 가리라 생각했던 남편이 내 곁을 무심히 떠난 것도 그 집에서였다.
그 땐 아이들이 제발 이사를 하라고 성화를 해댔고, 나도 언젠가는 불편한 이 집에서 옮겨가리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사를 하고 나면 오래 살던 집의 그리움에 마음에 열병이 날 것 같았다. 얼마나 심하게 아플까,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워하게 될까 두려웠다. 아파트로 이사 해 살고 있는 지금도 오래된 집을 보면 내재 돼 있던 유년의 추억이 되살아나고, 안개처럼 아련한 그리움이 가슴 한 구석을 간질이는 듯, 노곤한 환각에 빠져 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