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뜰에 심근深根 복사나무
장 종 국
무엇인가를 심어야 되는 계절이다. 추위를 떨쳐내지 못한 겨울의 잔상들이 남아있는 이른 봄, 문산 오일장 귀퉁이에 이동식 작은 화원에서 여러 종류의 꽃나무를 팔고 있었다. 제일 잘 살고 꽃이 빨리 피는 나무가 복사나무라기에 심었다. 기대만큼 아름다운 꽃과 향기로 복사꽃은 뜰 안에서 단연 인기 높은 나무가 되었다.
지방에 살다 상경한 지인에게 문안 인사드릴 겸 나들이 하였다. 지인의 집 근처 과일 가게에 먹음직스러운 복숭아 한 소쿠리를 사 들고 갔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대청마루에 앉아 그 간의 궁금한 이야기로 회포를 풀었다. 그런데 인사차 사 들고 간 복숭아 소쿠리가 구석으로 슬며시 물리치는 것 이였다. 의아스러웠다. 나중에서야 복숭아를 물리친 이유는 종교적인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복사나무(복송아나무, 장미과 Rosaceach)는 갈잎작은키나무로 높이는 3~6m까지 자란다. 꽃피는 시기는 4~5월이며 열매를 맺는 시기는 7~8월이며 과일나무로 재배한다. 분홍색 꽃이 잎보다 먼저 피는데 가지에 1~2개 씩 달린다.
복사나무는 민간신앙에서, 복숭아열매와 함께 축귀(逐鬼)의 효능을 지닌 것으로 믿고 있다. 그래서 잡귀를 쫓을 때 복사나무가지가 사용되며 그 열매인 복숭아도 같은 기능을 하는 것으로 생각 된다. 또한 꽃도 아름답고 열매도 맛이 좋지만 집안에 심지 않는다. 복사나무가 신령스러운 나무여서 요사스러운 잡귀를 몰아내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 가까이 심으면 제사를 지내는 귀신들이 복사나무가 무서워서 오지 않기 때문이고 제사상에는 복숭아열매는 올리지 않는다고 한다.
용재총화(?齎叢話)에는 궁중에서 세말에 행하는 악귀퇴치의 방법으로 연극 구나희(驅儺戱)를 행한 기록이 있다. 동쪽으로 뻗은 복사나무 가지로 비를 만들어 귀신을 때리고 쫓아내는 행위이다. 민간에서도 복사나무로 빗자루를 만들어 잡귀를 몰아내고 신년을 맞는 풍습이 있다. 민간치료법으로 정신병 환자에게 맹인이나 무녀가 굿을 하면서 복사나무 가지로 환자를 때려 악귀를 쫓아내는 의식을 치렀다. 또 부적에 찍는 도장은 반드시 복사나무로 조각해야 했고, 어린아이 돌날 복숭아모양을 새긴 반지를 끼워주는 풍습이 있었다. 이는 어린이 사망률이 높던 시절 잡귀로부터 아이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예로부터 복숭아꽃은 아름다운 여인에 비유되어 과일을 많이 먹으면 얼굴이 예뻐진다고 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도화녀(桃花女)는 자용염미(姿容艶美)하여 신라 진지왕이 반할 정도로 요염하고 예뻤다고 기록되어있다.
나의 도원에는, 꽃을 보기위해 심근 복사나무가 뜰 안에 한그루가 있고, 열매를 따먹기 위한 복사나무가 뜰 밖에 2그루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특정 종교가 없는 관계로 요염한 꽃을 즐기고 새콤달콤한 열매의 맛도 함께 즐기고 있다.
복사나무의 열매는 해독의 약리작용으로 니코틴 제거에 효과가 있고, 혈액순환, 심장, 간장, 대장에 좋다한다. 씨는 한방에서 진해제로 쓰고 생리불순과 생리통에 쓰인다. 꽃잎을 말린 것을 백도화라 하여 이뇨제로 쓴다.
나무 잎은 두통과 복통치료에 효험이 있단다. 생선을 먹고 식중독에 걸리면 복숭아를 껍질째 먹으면 효험이 있다고 한다. 잎을 달인 물에 목욕을 하면 땀띠, 습진 등 피부미용에 좋다고 한다. 개성에서는 꽃잎으로 술을 담가 도화주라 하여 약주로 복음 하였다.
‘복숭아밭집 딸은 미인이고, 외밭 집 딸은 약골’이란 말도 있다. 복숭아와 상극인 식품에 뱀장어와 자라고기를 삼간다.
중국 당나라 태생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남긴, 대림사의 복숭아꽃(大林寺桃花) 시조 한 수를 음미하여보자.
人間四月芳菲盡(인간사월방비진) - 속세에는 사월이라 꽃이란 꽃은 다 졌는데
山寺桃花始盛開(산사도화시성개) - 산사의 복사꽃은 이제 한창 만발 하네
長恨春歸無覓處(장한춘귀무멱처) - 가신 봄은 찾을 길 없어 한탄하고 있었더니
不知轉入此中來(부지전입차중래) - 어느 사이 이곳으로 들어 왔었네.
강주지방의 명산인 여산에 올라, 향로봉 꼭대기에 있는 대림사를 찾아 읊은 시이다. 여산은 높고 험하며 계곡이 깊어 평지 보다 봄이 늦게 찾아오기 때문에 평지는 이미 초여름이지만 대림사는 이제야 봄이 온 것 같았다. 백거이의 자는 일락천(一樂天)으로 천명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는다(樂天知命不要)라며 낙천적으로 여생을 보낸 시인이다.
중국 곤륜산의 서왕모 궁궐에 있는 복사나무는 3000년에 한 번 꽃이 피며, 영원한 생명의 열매인 천도는 또 다시 3000년이 지나야 열린다고 한다. 여기에서 천도는 신선을 죽지 않게 하는 불사약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인의 관념 속에는 세속과 떨어진 선경으로 전설상의 이상향, 유토피아가 있다. 무릉도원(武陵桃源)이 그곳이다.
일본의 오래된 동화에서, 복숭아는 도태랑(挑太郞, 모모타로우)의 탄생을 돕는 자궁을 상징한다. 복숭아 열매 속에서 태어난 도태랑 신은 남방의 도깨비들을 정벌했다고 내용의 동화다. 이 동화에서 복숭아가 남아를 분만 했다고 전해지는 것을 보더라도 복숭아는 여성을 뜻 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구원과 성모마리아의 표상물이며, 이집트 신화에서는 침묵의 신 하르포크라테스에게 공물로 바쳐졌다. 그는 태양신 호루스와 동일시되며 어린 아이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복숭아는 잎, 줄기, 씨, 열매까지 버릴 것 없는 나무로, 사람들의 주위에서 보여주고, 먹여주고, 많은 이야기와 꿈을 남기고 있는 친숙한 자연의 선물이다.
무릉도원(武陵桃源)이야기
중국 후한(後漢, 25~222) 때에 유신(劉晨)과 완조(阮肇)라는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영평(永平) 연간에 두 사람은 같이 천태산(天台山)에 오르게 되었다. 그들은 한 달여 동안 약초를 캐면서 산중을 헤맸다. 그러던 중 식량이 다 떨어져 굶주림 끝에 쓰러질 것 같았다. 먹을 것을 찾아 산중을 헤매던 중 커다란 나무에 과실이 탐스럽게 익어 매달려 있었다. 두 사람은 기뻐하면서 이 과일을 따먹고 허기를 채우고는 물을 마시려 계곡으로 내려갔다. 맑게 흐르는 물에 참깨가 떠내려 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참깨가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틀림없이 상류 골짜기에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라고 믿어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
두 사람은 한참을 계곡 따라 올라갔다. 그런데 올라가고 있으려니 사방천지가 활짝 트이고 으리으리한 누각이 서있고 그 안에서 꽃과 같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두 여자가 옥을 굴리듯 맑은 목소리로 두 사람을 불렀다.
두 사람은 얼을 빼앗긴 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삽시간에 많은 미인들이 복사꽃을 가지고 나타나 두 여자를 위해 좋은 신랑이 생겼다고 입을 모아 축하를 해 주었다.
처음에 두 사람은 당황했으나 이내 마음이 끌려서 이 여인들의 청을 받아들여 결혼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고향 생각이 너무나 간절해 어느 날, 석별의 인사를 나누고 옛날 살던 집으로 돌아왔다. 막상 집에 돌아와 보니 아는 사람들은 다 세상을 떠났고 이미 7대가 지나고 있었다. 그 동안 이렇게 긴 세월이 흐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하는 수 없이 다시 천태산에서 그 전의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복사꽃이 핀 곳을 찾았으나 복사꽃도 미인의 모습도 찾지 못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희면서 분홍빛을 띤 겹꽃의 눈부심 곁으로 다가가고 싶은 나희덕의 서정시 한 편이 곱다.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한 편을 감상해보자.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 꽃과 분홍 꽃을 나란히 피워 서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 꽃과 분홍 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 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울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2015년에 발표된 복숭아를 제재로 쓴 시 한편에는 공허하고 관념적인 진술대신에 구체적인 삶의 언어를 흡착시키는 임주아 시인의 “복숭아” 한편에서 삶의 내밀한 이미지를 품어내는 시의 가슴에 젖어보자.
“당신이 내 처음이야 말하던 젊은 오빠 입가엔 수염이 복숭아털처럼 엷게 돋아나 있었겠지 엄마는 겁도 없이 복숭아를 앙 물었겠지 언제부터 뱃속에 단물이 똑똑 차오르고 있었는지 모르지 이상하다 당신이 매일 쓰다듬는 곡선이 나였는지
그해 여름 홍수 난 집 마당에 떨어진 복숭아 두 알 막 태어난 아기 얼굴 같은 산모가 위험하니 그냥 낳으세요. 그냥 나온 나는 태어나 백도복숭아처럼 물컹한 젖을 물고 눈을 끔뻑 거렸겠지 눕혀두면 하루 종일 잠만 자니 얼마나 좋은 지 엄마는 말했지
깨어나면 조금은 소란스러운 십 층집 어느 날 무선전화기가 날아다니는 종종 창문 밖으로 식탁의자가 떨어지는 떨어진 의자가 일층정원을 박살내는 동네방네 돌아다닌 소문이 햇볕을 꺾는 대낮 바람결에 모빌은 돌아가지 아이 좋아, 동해안 한 바퀴 시원하게 돌고 온 아빠 곰 같은 등 뒤에 서너 해 살다간 여자 풋 복숭아자국 돋아나는 눈두덩이 엄마어디가
짓이겨진 과육을 뚝뚝 흘리면서 나온 천천히 무릎을 쓰다듬지 뭉게뭉게 피아 나는 욕탕에서 오랜만에 만난 당신의 살을 만지지 복숭아껍질 따가운 살갗, 엉덩이가 반으로 쪼개지는 기분이야 붉은 속살, 아빠와 엄마사이에 온탕과 냉탕 사이에서 애인과 남자사이에서 갈팡질팡 놀지 더 이상 처음이 아닌 우리에게 또 한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