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건너 북녘 하늘 아래 개성이 보이네
(paju D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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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땅 DMZ>
DMZ(非武裝地帶)는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특별한 땅으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에서 태어 난 땅이며, 눈앞에 두고도 갈 수 없는 가슴 아픈 사연이 구구절절이 쌓여 있는 우리민족의 한이 서린 곳이다. 그런 곳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온다. 전 세계에서 찾아오고 수많은 내국인들도 찾아온다. 사람들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비극적인 호칭의 장소를 눈으로 확인하려고 찾아오고, 실향민들은 두고 온 고향 언저리라도 보고 싶어 찾아간다. 그러나 이해관계 없는 이국인들에게는 다만 호기심의 대상일 뿐일까? 언제 쯤 사람들의 발길이 저 땅에 닿을 수 있을까. 도라산 전망대에서 7km 건너 개성을 바라보며 한 숨 짓고 있는 노인은 실향민임이 분명할 터이다.
DMZ는 demilitarized zone의 약자로, 서로 적대 관계에 있는 국가나 군대 사이의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해 관계국 사이의 협정에 의해 무력을 배치하지 않기로 약속한 중립 지대를 말한다. 이 지역에서는 군대주둔, 무기배치, 군사시설 설치가 금지된다. 1951년 7월 10일 휴전회담이 시작되고, 7월 27일부터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의 설정문제에 대한 토의가 시작되어, 유엔군 측은 현재의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하자고 주장한 데 대하여 공산군 측은 38도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뒤 수차에 걸친 논의 끝에 공산군 측이 유엔군 측의 제안을 받아들여 군사분계선을 쌍방 군대의 현재 접촉선으로 하고, 남북으로 각각 2㎞씩 4㎞ 폭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하는 데 합의함으로써 11월 27일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설정 협정이 조인되었다. 그리하여 길이 155마일(248km), 폭 4km, 면적 992㎢의 비무장 지대가 한반도의 허리를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가로질러 막아 놓고 말았다. 그로부터 남과 북의 왕래는 끊어지고 말아 지금까지도 이산가족의 염원은 한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비무장 지대는 생태계의 보고>
올해가 2015년이니 1950년으로부터 6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강제로 막아 놓아 사람의 발길이 닿지 못한 비무장 지대는 자연(自然)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한반도에서 서식하는 동식물과 어류 조류, 미생물까지 인간의 간섭 없이 종족을 번식 시키며 자유로이 살고 있다. 아픈 역사를 딛고 포화로 망가진 땅에서 자연은 강한 생명력으로 다시 살아나 지구의 원초적 모습을 되 살려 낸 것이다. 생태계의 보고이며, 생태계의 낙원인 비무장 지대는, 산악지대와 평야지대를 가로지르고, 계곡과 분지로 나뉘며 여러 개의 강이 흐르고 있다. 그곳엔 산악지대생태계, 내륙습지, 그리고 담수와 바다와 연한 해안생태계가 함께 존재하는 생물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 국제적 보호종이나 위기 종 그리고 많은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 종 및, 보호 야생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보호종인 물새나 두루미류의 서식처 및 이동경로가 되어 생물종다양성 유지를 위해 국제적 차원에서도 중요한 지역이다.
DMZ와 민간인 통제구역을 포함하여 한반도에 서식하는 2900종 이상의 식물 가운데 1/3과, 70여종의 포유류 가운데 1/2, 320종의 조류 가운데 1/5이 이곳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비무장 지대는 크게 동해안 지역, 중동부 산악지역, 중서부 내륙지역, 서부해안 및 도서지역으로 나눌 수 있으며, 생태계 및 생물상의 특징을 명료하게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연전에 대통령이 비무장 지대에 남북에 걸쳐 어느 일정 지역에 ‘평화공원’을 만들자고 제의했다. 비무장지대에 평화공원이 들어서면 생태계가 파괴 될 우려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막아 놓기만 하면 자연은 영영 볼 수 없게 되고, 볼 수 없는 자연은 인간에겐 쓸모없는 땅이 되어 버릴 것이다. 자연을 파괴했던 전례를 거울삼아 철저한 대비를 하면 어떨까.
<평화열차- DMZ- train>
DMZ 관광이라고 말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DMZ까지 들어가는 건 아니다. DMZ 안보관광은 임진각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민통선(민간인 통제선) 안으로 들어가는 코스와 코레일 평화열차를 타고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는 코스가 있다. 그 중에 서울역에서 출발하여 도라산역까지 가는 DMZ 트레인을 타고 긴장과 평화, 역사와 자연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보기로 하자. 경의선 DMZ 트레인 평화열차는 2014년 5월 4일부터 운행을 시작하여 현재 코레일의 관광 상품 중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하절기에는 하루 두 번씩 운행 하였으나 동절기에는 한 번씩만 운행하고 있다. 열차에는 승객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아름다운 여승무원들이 있다. 열차 내를 분주히 오가며 승객들이 불편하지 않게 보살피는 승무원들의 미소는 여행객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열차는 3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2호차에 매점이 있어 편한 좌석에 앉아 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먹으며 여행을 즐길 수 있다.
DMZ 트레인답게 열차의 외관은 ‘철마는 달리고 싶다’를 상징하는 증기기관차 그림과, 동서양 사람들 그리고 아이와 어른들의 맞잡은 손을 통해 평화와 사랑, 화합을 담은 그림으로 치장하였다. 1,2,3호차의 열차 안 천정에는 손에 잡힐 듯 하늘로 자유롭게 떠가는 풍선이 그려져 있고, 바닥에는 녹색의 연잎과 분홍색의 연꽃이 밟기에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게 깔려 있다. 벽면은 무궁화, 타이포그래피(평화, 사랑, 화합), DMZ 이미지 사진이 있으며, 의자 커버에는 DMZ의 생태환경과 세계적 평화의 상징 언어인 바람개비가 그려져 있다. 각각의 차량은 1호차 평화실이 48석이고, 2호차 사랑실은 40석이며, 3호차는 화합실로 48석의 객석을 보유하고,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으로 세계적 생태의 보고가 된 DMZ를 세계인과 함께 달리는 테마열차로 꾸몄다.
창문 위쪽 공간을 따라 열차갤러리로 활용하여 주제별 사진을 전시해 놓았는데, 1호차엔 <한국철도의 역사>를, 2호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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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
운 행 구 간 어른 어린이 경노
서울→ 도라산 8900 6300 7300
서울→ 임진강 8600 6100 7100
문산→ 도라산 5000 2500 3500
운행시간
출발→ 도착 서울 능곡 문산 운천 임진강 도라산
서울→도라산 10:40→ 10;58→ 11:34→ 11:39→ 11:58→ 12:8
도라산→서울 17:32→ 17:08→ 16:32→ 16:26→ 16:21→ 16:10
DMZ train 승객은 열차표를 살 때나, 민간인 통제선 북쪽지역의 도라산역에서 DMZ 관광용 표를 사서 연계 버스를 이용해 도라산전망대→ 통일촌(중식)→ 제3땅굴→ 도라산평화공원을 방문하고 도라산역으로 돌아와 다시 열차를 타고 귀가한다.
<평화공원엔 슬픈 꽃사슴 가족이 살고 있다>
도라산 역에서 500m 거리에 평화공원이 있다. 평화의 상징인 조각품들이 있고 봄, 여름엔 야생화가 피어나며 한반도 지형의 연못과 휴전선 부근에 옆에 있는 호수 모양대로 만든 연못이 있다. 길 가운데 설치해 놓은 전쟁 관련 사진들을 보면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DMZ 생태 전시실이 있고, 그 옆으로 작고 아담한 무인 판매점인 ‘꽃사슴 매점’에서 간단한 음료와 과자를 살 수 있다. 전시실 뒤 쪽에 있는 꽃사슴 우리에서 세 마리의 꽃사슴이 어린이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꽃사슴은 원래 아빠와 엄마 그리고 새끼 두 마리가 있었다.
일 년 전 어느 날 아빠 사슴이 우리를 탈출하여 엄마와 아기사슴 두 마리만이 외롭게 지내고 있었는데, 임신하고 있던 어미사슴이 새끼를 낳아 아주 작고 예쁜 사슴이 태어났다. 어느 날 아빠 사슴이 몇 달 만에 돌아와 한 가족이 모두 모여 단란하게 살게 되었는데 들에서 야생하던 들개들이 갓 낳은 아기와 또 한 마리의 아기사슴을 물어서 죽고 말았다. 이제 세 마리만 남은 사슴 가족의 넓은 우리가 더욱 쓸쓸해 보인다.
<제 3 땅굴>
열차타고 도라산역에 내리면 연계버스를 타고 편화공원과 제 3땅굴, 도라산 전망대를 보러 간다. 제 3 땅굴은 북한이 남침하기 위해 파 놓은 것으로 세 번째로 발견 되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 3땅굴은 땅굴 작업에 참여했던 탈북 기술자의 제보로 발견한 것이다. 1978년 발견 된 제3땅굴은 문산까지의 거리가 12km, 서울까지의 거리는 52km지점에 있다. 굴 내부는 폭 2m, 높이 2m, 총길이는 1,635m로 1시간당 3만 명의 병력이동이 가능하다.
북한은 이 땅굴이 적발되자 남한에서 북침용으로 뚫은 것이라고 억지를 쓰기도 하였는데 땅굴 내부 갱도를 살펴보면 굴을 뚫을 때의 폭파흔적이 남쪽을 향하고 있어 북한의 주장이 허구임을 알 수 있다. 2002년 5월 31부터 최첨단 시스템을 갖춘 DMZ 영상관, 상징조형물, 기념품판매장등의 시설이 설치되어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땅굴에 들어갔다 나오는 시간은 약 30~40분이 걸린다. 땅굴의 깊이는 아파트 25층 높이만큼 깊어, 임산부나 노약자는 모노레일로 이동하는 것이 편리 하다.
<도라산 전망대에서 고려의 도읍지를 바라보다>
도라산 전망대는 남측의 최북단 전망대로서, 전망대에서 바라다 보이는 개성은 직선거리 7km로 아주 가까운 거리이다. 도라산에서 개성까지는 평야지대로 날씨가 맑은 날에는 육안으로도 선명하게 보인다. 전망대에 설치해 놓은 망원경을 통해서 보면 더욱 잘 보인다. 7km의 가운데 지점에 군사분계선이 있고, 군사분계선 양쪽으로 2km씩 4km의 비무장 지대가 가로 질러 있다. 왼쪽으로 개성으로 가는 철길이 있고 그 옆으로 개성공단을 오가는 육로에 가로등이 줄지어 서 있는 게 보인다.
오전이나 오후에 개성공단에서 나오거나 들어가는 시간이면 하얀색 탑 차가 줄줄이 지나가는 장관을 볼 수도 있다. 조금 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개성 공단이 있고 그 오른 쪽으로 개성시가 보인다. 비무장 지대에 있는 남쪽의 대성동 마을 태극기와 북쪽의 기정동 마을 인공기가 보이는데 기정동의 깃대 높이는 160M이고 태극기의 깃대는 100M 높이로 멀리서도 잘 보인다. 다 베어내 땔감으로 사용하느라 나무가 없는 북쪽의 덕물산, 진봉산, 송악산은 겨울 찬바람에 벌거숭이로 누워있다. 저 건너 잡힐 듯 보이는 송악산엔 그 옛날 시인묵객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황진이의 묘가 있다는데, 어서 통일이 되어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都羅山의 유래>
도라산의 명칭은 고려시대부터 붙여 진 이름이다. 삼국시대 말기에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 들여가면서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리고 통일을 이룬다. 그 후 통일신라의 문화를 화려하게 꽃 피우며 태평성대를 누리던 신라는 200여년이 지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춘추 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영웅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궁예가 철원을 무대로 태봉국을 세우는가하면 견훤이 백제를 일으켜 세운다는 명분으로 후백제를 세웠고, 왕건이 개성에 고려를 세우니 신라의 영토는 경주 부근만 남게 되었다. 견훤이 경애왕을 죽이고 세운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은 남은 백성이라도 살리려고 고려에 가서 왕건에게 항복하였다. 그때 망해버린 신라가 안타까웠던 경순왕의 맏아들은 베옷을 입고 정처 없는 길을 떠났으니 그가 바로 마의태자(麻衣太子)이다.
경순왕은 고려에 항복하고 개성에 와서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혼인하여 살면서 늘 신라의 땅 경주가 그리워 개성에서부터 걸어와 도라산에 올라 신라 쪽을 바라보았다. 낙랑공주는 경순왕을 위해 도라산 중턱에 영수암이라는 암자를 지어 주었고, 사람들은 그때부터 경순왕이 산위에 올라 경주를 바라보았다고 하여 경주를 뜻하는 도읍都와 신라의 그물羅를 써서 도라산(都羅山) 이라 부르게 되었다. 신라왕들의 능은 모두 경주에 있지만 경순왕능은 임진강변에 있으니, 죽어서도 신라로 돌아가지 못한 비운의 왕이었다.
하루 종일 민통선 안에서 몇 곳의 안보 관광을 마치고 통일촌 마을에서 점심식사도 하였다. 이제 다시 도라산역으로 돌아 와 역에서 기다리고 있던 열차를 타고 귀가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땅, DMZ로의 여행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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