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가 볼만한 곳>
<마장 저수지> 풍경을 마음에 담다
오 순 희
가을바람 산들거리니 물과 하늘과 산이 푸르게 한 눈에 보이는 곳, 마장 저수지로 한 마리 휘파람새 되어 바람 따라 가보는 것도 좋으리. 그곳은 저수지라기보다 호수라 해도 손색이 없겠다.
혼자 가기 쓸쓸할 것 같아 동행을 찾으니 모두 바쁘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혼자 금촌에서 30분 거리를 달려서, 저수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하얗게 핀 억새풀이 갈바람에 쓰러질듯 휘청이며 흔들리고 있는 곳, 그 옆으로 높고 곧게 올라 간 148 계단이 아찔하니 어지럼증을 일으킨다. <하늘 닿는 곳 하늘 계단>이라 쓴 글씨가 다섯 번째 계단에서 예쁜 소녀처럼 수줍게 반긴다. 전에는 저렇게 높은 곳으로는 절대 올라가지 않으려고 위쪽 주차장에 차를 세웠었는데, 사진을 찍으려면 오늘은 이곳으로 올라가 보아야한다. 148계단을 숨차게 오르니 저수지 파란 물빛이 저 아래로 보이고, 간간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계단을 내려가 나도 그들의 대열에 끼어 물과 길과 사람들을 찍는다. 전에는 올 때마다 한 두 구간만 걸어 보고 말았었는데, 오늘은 데크로드를 끝까지 걸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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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 저수지는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만든 것으로, 농사철에는 179ha의 농지에 물을 공급하고 평소에는 지역주민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였다. 2006년부터 3년여에 걸쳐 저수지 일원 265,000㎡(8만평)에 1.8㎞의 수변 산책로에 걷기 편하고 자연친화적 데크로드를 만들었고, 분수대와 실개천으로 이루어진 다목적공원, 쉼터, 주차장 등 공원시설을 조성하였다. 도시민의 휴식 공간을 조성하여 자연환경과 어우러지는 문화 휴식 공간과 여가활동이나 자연 체험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저수지 주위로 낮은 산이 빙 둘러 있어 걷는 길에 그늘을 드리워 주고, 높은 산은 멀찍이서 굽어보고 있으니 풍경을 보며 산책하는 길이 지루하지 않겠다. 요즘은 먼 곳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고, 영화와 드라마 촬영장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젊은 부부가 작은 아이를 안고 큰 아이는 걸리며 지나간다. 아빠 팔에 안겨 까르르 넘어 갈 듯 웃는 아이의 천진함이 바람을 타고 전해져 온다. 건강한 가족의 건강한 웃음이 저수지 둑 너머로 울려 퍼져 나가고 웃음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려는가. 산들 바람에 물결이 미세한 파장을 일으킨다. 요즘 아이들은 놀이기구가 있는 곳을 좋아하고 컴퓨터와 핸드폰을 장난감 삼아 논다. 장난감은 정교하고 기능이 뛰어나 그것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상상이나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은 복잡하지 않다. 흙과 나무, 돌멩이, 꽃이 지천이고, 하나의 소나무에도 해묵은 진한 초록 잎이 있는가하면, 갓 돋아난 연한 연두 빛 새순도 보인다. 자연은 관찰 그림책이 되고 거대한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어른들은 숲이 내 뿜는 청량하고 상쾌한 기운에 천연 삼림욕을 즐기고, 데크를 걸으며 가슴속 시름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아이들의 장래를 이야기해도 좋으리. 자연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는 순해지고 너그러워져서 어떤 어려운 문제라도 의견대립 없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아빠와 함께하는 자연체험은 친구들에게 자랑 거리가 되지 않을까.
연인들이 데이트하기에도 좋은 곳, 여기저기 커플들의 데이트가 정겹다. 휠체어에 탄 어머니를 태우고 뒤에서 밀며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 그들은 모녀간일까 고부간일까, 주고받는 정담이 따듯해 보인다. 발길을 옮겨가니 저수지 중간쯤에서 물빛을 바라보며 데크 난간에 기대 선 연인들이 있어 지나치며 흘깃 쳐다보았다. 영화의 장면처럼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작품 사진 한 장 찍자고 하고 싶은 걸 방해가 될 것 같아 꾹 참는다. 대신 누군지 모를 만큼 멀찌감치 서서 몰래카메라로 찍었다.
저수지 물속에는 잉어와 붕어 등이 많이 서식하고 있어서 전에는 낚시인들이 많이 찾아왔었지만, 지금은 상수원보호 구역으로 지정 되어 낚시를 할 수 없다. 큰 오리 한 마리가 푸드덕 날개를 펼쳐 물을 털어 낸다. 지난해 왔을 때보다 그새 오리가 많이 늘었다. 어미오리를 따라 새끼오리들이 작은 물살을 만들며 헤엄치고 원앙도 물위에서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물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오리를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고추잠자리 떼가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비행하듯 날아다니는데, 수변 주위 야트막한 산 아래로 여름 꽃은 져 가고, 가을꽃이 피어나고 있다.
여기 와 있으면 세상에서 받은 상처가 아물 것만 같다. 외로운 날 마음의 생채기를 보듬고 싶어 초록을 찾아 기웃 거리다 보면 어느새 마음엔 새 살이 돋는 것 같다. 가끔 산과 물의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서울이나 일산 방면에서 40여분의 가까운 거리에 있는 마장저수지에 와서 머리를 식히고 돌아가시라 권하고 싶다. 날씨가 좋을 때는 도시락을 싸 와도 좋고, 마장저수지에서 마을 쪽으로 내려가 맛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에서 입맛의 즐거움을 느껴도 좋으리.
마장 저수지 가는 길은 순복음 기도원을 지나 광탄 시내로 들어서서 보광사 가는 길과 윤관장군묘 가는 길 삼거리에서 보광사 쪽으로 좌회전해야 한다. 보광사 언덕으로 오르기 전에 소령원 쪽으로 다시 한 번 좌회전 하여 잠시만 더 가면 마장 저수지이다.
저수지에서 마을 쪽으로 내려가면 근처에 방송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동이> 숙빈 최씨의 묘 <소령원>이 있다. 무수리 신분에서 빈이 된 여인. 영조를 낳음으로 해서 영조 이후의 조선 왕조의 왕들은 모두 숙빈 최씨의 후손으로 이어지게 된다. <소령원>은 아담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누구든 한 번 가보면 그곳의 풍경에 빠져 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미공개 지역이어서 들어 가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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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주변 공터에 차를 멈추고 저수지를 내려다보는 경치도 좋고, 저수지 언덕길을 올라 구불구불 돌아 나가면 기산 저수지 쪽 장흥 가는 길이다. 이 길은 전망이 좋고 한적해 연인들이 데이트와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더 할 수 없이 좋다. 어느덧 가을이 깊어 수변 둘레 산길에 단풍 들면 가을은 무르익어 가고, 물을 배경으로 데크 난간에 서서 포즈를 잡는 사람들의 사진 찍는 카메라 셔터 소리 들려오겠지. 물과 산과 하늘을 카메라 파인더에 담으니, 흰 구름 둥실 떠 있는 하늘이 곱고 물빛이 맑다.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저수지 풍경은 이미 마음속에 들어 와 버렸다. 오늘 마장 저수지에서 물빛에 취하고 하늘빛에 취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