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다 갔습니다. 아쉽게도 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봄이 없어졌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아직 봄은 우리가 느낄 만큼은 남아있습니다.
그 봄날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우리 같은 ‘장삼이사’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연분홍 치마를 휘날리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을’ ‘원치 않는 시집’을 가는 것으로도 묘사했습니다만, 봄날은 우리에게 아지랑이처럼 아련하고,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것이 오히려 처연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니 ‘옷고름을 씹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 정서와는 너무도 무관하게도, 얼마 전 어느 당의 최고위원이라는 사람이 공식회의 석상에서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불렀다고 해서 난리가 난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왜 그랬을까?’하는 생각뿐입니다. 잠깐 정신이 혼미해져서 그랬다고 하는 사람들로부터 ‘그 양반 원래 그렇다’는 평가까지 참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더군요.
그 분, 봄날이가는 것이 아쉬웠겠지요. 그 분 뿐만 아니라 봄날이 가는 것이 아쉬운 사람들이 한 300명 정도 될 겁니다. 가슴에 붙인 배지 하나로 대통령에서 장관까지 호통을 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 배지만 붙이면 대부분 재산도 늘더군요. 휘하에 십여 명의 수하를 둘 수 있고, 억대가 넘는 돈을 받고, 어디가나 ‘대우’를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일이라고는 누군가로부터 끊임없이 돈을 받거나, 서로 싸우거나, 자기들끼리 싸우는 일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 ‘봄날’이 단 4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봄날이 가는데 얼마나 아쉽겠습니까. 오죽했으면 공식회의 석상에서 노래를 부를 만큼 가는 ‘봄’이 아쉬웠을까요?
내년 봄에는 또다시 4년의 ‘봄날’을 누리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귀다툼을 벌이겠지요. 그래서 한 300명이 ‘4년의 봄날’을 누릴 것입니다.
그들 역시도 ‘누군가로부터 끊임없이 돈을 받거나, 서로 싸우거나, 자기들끼리 싸우는 일’을 하겠지요. 그리고 또 4년이 가고 또 4년이 갈 겁니다.
시간이 가면 나아질까요? 글쎄요.
요즘보아서는 어디 그런 기대를 갖을 수나 있겠습니까?
봄날은 여전히 가고, 누군가는 여전히 옷고름이나 씹겠지요.
봄날이 갑니다. PAJU 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