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다. 60년 내내 우리는 모두, 마음속 깊이 평화통일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물리적인 거리가 가장 가까운 파주는 개성공단으로 인해 왕래가 빈번했었기에 통일을 향한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 통일 문제는 국가적 과제이며 범민족적 역량을 모아야 하므로, 국내외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통일을 논의하여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할 수 있도록 제도화 한 헌법기관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이다.
민주평통을 대표하는 상징은 무궁화, 비둘기, 태극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서 강건함과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함께 하고 있는 무궁화와 태극을 품은 비둘기가 조화를 이루어 민주적이며 평화로운 통일을 지향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민주평통은 1980년 10월 27일 국민투표로 확정된 헌법 제68조에 명문화하고 있으며, 1981년 3월 14일에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법’을 공포하여 창설되었다. 운영위원회, 상임위원회 그리고 17개 시도와 이북5도, 해외5개의 지역회의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역협의회는 271개가 있다. 자문위원은 조국의 민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의지가 확고하고 통일 과업의 수행에 기여하였거나 기여할 수 있는 대표급 인사라야 추천을 받을 수 있다. 자문위원의 역할은 국민의 통일 의지를 성실히 대변하여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자문에 응할 수 있어야 한다. 1981년 1기 자문위원은 8,919명으로 시작되었는데 임기는 2년이고, 현재 16기 자문위원은 19,937명이다. 해외 115개국에 3,275명, 국내엔 직능대표 13,577명과 지역대표 3,085명 위촉되어 활동 중인데, 그 중 파주에는 92명의 자문위원이 있으며 현재 제16기 협의회는 김경선 회장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경선 회장은 1943년 탄현면 성동리에서 태어난 파주 토박이이다. 집 가까이에 있는 임진강만 건너면 북한이라, 전쟁도 전쟁 후의 긴장상태도 늘 체감하며 살고 있다. 논에 가려면 자유로 아래 통로를 지나야 갈 수 있어 지금도 주민출입증을 보이고 확인해야만 통행이 가능하다. 자유로가 생기기 전에는 집에 들어 올 때도 군부대의 출입통제를 받아 검문을 한 후에야 드나들 수 있던 마을이다. 김경선 회장은 지역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통일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14기에는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추천 받아 위촉이 되어 수석부회장으로 활동하였고 16기에는 협의회장을 맡게 되었다. 지역 일도 열심이지만 8천여 평의 논농사, 밭농사를 직접 짓기 때문에 모내기가 한창인 5월에는 더욱 분주한 가운데 있는 김경선 회장을 만났다.
민주평통 협의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계획하신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민주평통의 기본 목표는 ‘국민통합’과 ‘평화통일 기반 구축’입니다.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행복한 한반도’, ‘8천만 모두가 원하는 행복한 통일’을 위해 앞장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 인거죠. 북한을 평화통일의 장으로 이끌어 내는데 가장 큰 역점을 두어야 하고 두 번째는 주변에 민주평통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민주평통’에 대해서도 또 하는 일에 대해서도 많이 모르고 있습니다. 또 민주평통에서 하는 일이 주어진 체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평통에서 현재 하고 있는 사업은 미래 세대를 위한 통일 교육, 학교로 찾아 가는 통일교육, 시민 상대로 안보 견학과 함께 하는 통일 연수가 있습니다. 2015년에는 파주시 공직자를 대상으로 통일연수를 할 예정입니다.
민주평통이 벌써 삼십 년을 넘었으니 이제는 틀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운영을 고민해야 하는데 남북 관계가 안 좋아져 활성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파주시에도 남북교류협력위원회에 북한을 도울 수 있는 기금이 있는데 현재는 북에서 거부를 해 보류 중에 있는 것으로 압니다. 파주는 북한과 가장 근접한 접경지역이라 북한의 한 지역과 자매도시 결연을 맺어 직접 교류하고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면 더 좋겠습니다. 영양결핍을 겪고 있는 북한 아이들의 영양제 지원이나, 학용품 지원 같은 것들을 준비했지만 전달하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정부의 허가 등 해결해야 할 여러 가지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다양한 교류 방법을 고민해 봐야 합니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해서는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신지요.
“북한이탈주민은 현재 2만8천여 명에 달하는데, 경기도에 7,300여 명이 있고 그 중 파주에는 약 300여 세대에 500여명의 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분들 중에는 북한과 남한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북한이탈주민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들에 대한 사회 인식을 개선해야 하고, 사회전반에 걸친 관심과 대안을 마련해 극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국가차원의 각종 지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들이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먼저 왔고 통일의 교량역할을 할 인재들이라는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민주평통 협의회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계획해 파주에 거주하고 있는 이탈 주민들 중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 ‘임진강예술단’을 창단 시킨 것이 커다란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단원들은 대부분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서 연습하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남과 북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평화통일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파주를 대표하는 축제인 파주개성인삼축제와 파주장단콩축제에서도 공연을 했습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 가져 주시고 격려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주변에서 회장님을 ‘다문화 복지에 새로운 활로를 개척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어떤 일 때문인지 궁금합니다.
“2008년 다양한 가족 구성원들의 삶의 질 향상과 복지증진을 통해 국가 비전에 기여할 것을 목적으로 ‘다문화연구회’라는 것을 결정했습니다. 당시 파주에 다문화 가정이 약 천 가구 정도 되었는데, 주변에서 다문화 가정을 바라보는 인식도 그렇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는 가정이 많았어요. 그래서 2009년에 다문화복지협회를 창립해서 제가 초대 회장을 맡고 이사님들과 회원님들의 후원금으로 다문화가정 복지를 위해 활동해 왔습니다. 우리 문화를 무조건 주입 교육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가 어울릴 때 아름다운 무지개가 되는 것이기에 ‘우리는 아름다운 무지개 친구’라 했습니다.
한국어강사 자격증을 수여하고 다문화가족복지사 수료증 발급, 다문화방과후지도사, 가족상담사 양성, 다문화 자녀 방과 후 프로그램, 찾아가는 상담교실 등을 운영해 왔습니다. 100만 명이 넘는 외국인 근로자, 10만 명이 넘는 결혼이민자가 있는 현실에서 다문화 가정의 복지증진, 권익보호, 평생교육을 위해 협회에서 많은 노력을 해 왔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국가적 차원에서 다문화가정을 인식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었고 지역사회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예산을 지원 받아 운영한 것이 아니라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우리 국민이잖습니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었습니다.”
2009년 파주경찰서 행정발전위원장을 지내셨지요.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요.
“지금은 경찰발전위원회라고 부릅니다. 경찰서의 업무현황 및 활동사항 등을 정기적으로 브리핑 받고 경찰과 민간인들 간의 유대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교량역할을 합니다. 체육대회를 열기도 하고 학생들 장학금을 마련해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2010년에는 운영하고 있는 ‘옛날시골밥상’이 범죄피해자 지원센터 협력업체로 선정되어 지원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타 지역에서 손님이 왔을 때 파주에서 가장 소개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어디일까요?
“두말 할 것도 없이 제 고향이죠. 저는 이곳 탄현면 성동리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몹시 가난했지만 그래도 그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고 아이들을 낳고 키우고 살아가고 있는 내 인생이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고향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00년대 후반에 적성과 파평 그리고 탄현면에는 주민자치위원회가 아직 조직되지 않아 침체되어 있는데 반해, 다른 읍·면에서는 활성화 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2008년도에 우리 탄현에도 주민자치위원회를 조직하고 제가 초대회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고향을 위해 할 일을 찾은 거죠. 주민자치위원장이 되고 통일동산 사거리에서 주민들 모두가 참여하는 ‘삼도품 축제’를 개최해, 동떨어져 있던 헤이리 주민들과도 교류하고 주민들 간에 소통하는 장을 만들었습니다. 삼도품축제추진위를 구성하고 3천 여 만원의 기금을 마련 해 주민과 관광객 1만 여 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삼도품은 임진강과 한강이 성동리 오두산성 아래에서 만나 서해로 흘러가기 때문에 세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지금은 축제가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 때만 해도 파주에 지역 축제라는 것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어요. 처음이라 단체장 대부분이 찾아 주셨고,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셔서 비가 오는 중에도 성황리에 치룰 수 있었습니다. 마음 졸이며 애써주신 마을 주민들도 감사하고 찾아 주셨던 방문객들도 고마웠습니다.
지금은 성동리 맛고을이 2009년 경기도음식문화시범거리로 지정되었고, 전국적으로 유명해져 휴일이면 들어오는 입구에 차량정체가 일어날 정도로 발전하였습니다. 접경구역에서 북한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통일교육의 장으로 더욱 많이 활용되었으면 합니다. 더 큰 바람이 있다면 조선시대 때 한강과 임진강을 오가던 배가 다녔던 것처럼, 배도 띄우고 고기잡이 체험도 하고 그러면 이 지역이 눈부시게 활성화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엔 오두산 밑에 배 몇 척이 정박해 있었고 숭어, 장어, 깨나리, 갈게 등 나가기만 하면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이 잡았거든요. 그러려면 통일이 되어 임진강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야겠지요.”
성동리 맛고을 번영회 김은주 회장님이 따님이시죠? 언제부터 식당을 운영하고 계신건가요?
“아주 시골이었던 이곳은 자유로가 생기면서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초창기에는 그런 기미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농사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아 변화를 고심한 끝에 직접 지은 농산물로 음식을 만드는 식당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93년 ‘옛날시골밥상’이라는 이름으로 개업을 할 당시 이 근처엔 식당은 물론 다른 가게도 거의 없었습니다.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지키는 것이 있는데 ‘내가 먹을 것처럼, 내 식구가 먹을 것처럼 정성껏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지금까지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맛고을 번영회장이 된 아이가 둘째 딸인데 식당 일을 돕기 시작한지 10년이 넘어 이제는 알아서 척척 잘 합니다. 맛고을 상인들과도 마음 맞춰 일도 잘 하고 마을 주민들과도 잘 지냅니다. 물론 손님들한테도 친절하게 잘하고 직원들도 잘 챙깁니다. 주변에서는 나더러 나이가 많으니 이제는 농사를 짓지 말라고 하지만, 그건 나를 사기꾼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직접 농사지은 것으로 음식 만드는 것을 고객들이 다 알기 때문에 농사를 그만 둘 수가 없습니다. 물론 고기나 생선 등은 외부에서 구입하지만 아주 꼼꼼하게 고릅니다.”
탄현면 성동리 프로방스를 100m쯤 지나 오른쪽에 있는 ‘옛날시골밥상’은 군인할인업소이다. 뿐만 아니라 자원봉사 종사자, 탄현면 장애인협의회에 소속 된 고객은 현찰 결제 시 10%씩 할인 해준다. 음식 맛도 물론 최고지만 경영자의 이런 마인드가 있기에 20년 넘게 고객들이 꾸준히 찾는 음식점이 되었을 것이다.
가장 고마운 사람
“음식점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사모님께서 음식을 잘 하시나 봐요”’하고 물었더니, “입이 길들여져서 그런지 맛없는 게 하나도 없어요.”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고향이 전라도인 김경선 회장의 아내 김영단 여사는 평소에 남편이 농사짓는 쌀과 자신이 가꾼 야채로 직접 음식을 하고 싶다고 해서 시작한 음식점이다. 처음 음식점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손님 밥상에 낼 도토리묵과 두부는 변함없이 그날 새로 만든다. 지금은 바빠서 돕지 못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부가 함께 만들었다. 그 힘든 일을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아니까 아내 혼자 하게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스물여섯에 결혼해서 45년을 넘게 함께 살아 온 부부다. 김경선 회장은 아내를 이렇게 소개했다. “잔소리 안 하고, 음식 맛있게 해 주고, 항상 건강 먼저 챙기라며 어렵고 힘들 때마다 옆에 있다는 자체가 힘이 나게 해 주는 사람입니다.” 근래 들어 바깥일을 많이 해서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며 ‘사랑 한다.’고 ‘고맙다’고 늘 표현하며 살려고 애쓰는데, 서로 신뢰하지만 마음은 표현해야 더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라며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감추지 못한다.
“아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입니다. 쪼들리고 힘들 때 둘이 얼마나 억척스럽게 일했는지, 고생 참 많이 시켰습니다. 지금 농사짓고 있는 대부분의 땅은 그렇게 해서 서른다섯 살 이전에 장만한 것들입니다. 송아지 길러 팔고, 결혼 예물 팔고, 집사람이 모아둔 돈까지 모두 모아서 처음 땅을 장만 했을 때 뭐라고 말 할 수 없이 좋았습니다. 나 힘들까봐 아내는 몇 사람 몫의 농사일을 하고 정말 열심히 밤잠도 안자고 죽도록 일해서, 그렇게 장만했으니 만감이 교차하죠. 재산 불리는 재미에 무리를 해서 아내가 많이 아팠었습니다. 옛날에는 누구랄 것도 없이 다 고생했지만 아내는 특히 더 먹을 거 안 먹고 쓸 거 안 쓰고 일만 했습니다. 한 번은 일을 끝내고 났는데 아내의 바지가 잘려져 나가 있는 겁니다. 송아지 키워서 농사에 쓰려면 길을 들여야 하는데, 사람을 사서 하면 돈이 드니까 아내하고 둘이서 길을 들였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일했으면 소가 바지를 밟아 찢겨 나간 줄도 모르고 일을 했겠습니까.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아내는 좌골신경통으로 수술은 안 했지만 치료 받으러 3년을 병원에 다녔습니다. 그 땐 의료보험이 없을 때라 쌀 한가마니 팔면 3,4일밖에 치료를 못 받았어요. 세브란스 병원, 경희의료원, 침 잘 놓는다는 데를 물어물어 여기저기 다녔지만 낫지를 않았어요. 그러다 누가 아기 낳으면 좋아질 수 있다기에 속는 셈 치고 아기를 가졌지요. 그런데 넷째를 낳고는 말끔하게 나은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막내를 복덩이라고 부릅니다. 지금도 멀쩡해요. 고맙지요.”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애틋함이 김경선 회장의 말 속에 깊이 묻어났다.
청년실업 문제뿐만 아니라 경기침체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하고 있는데 가까운 사람이 그런 상태라면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행복해 집니다. 지금 취업이 안 되어서, 또 계약직이라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저마다 힘든 일들이 있습니다. 다 같이 힘든 거죠. 혼자만 힘든 게 아니니 외롭다고 생각 말고,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한다.
마음에 두고 꼭 지키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어려서부터 ‘항상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최선을 다하면 크게 성공하지 않아도 나름 성공한 삶이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이제까지 그거 하나는 지키며 살았죠. 어릴 때 아버지께서 “남에게 손가락질 받지 말고 살아라.”라고 말씀 하신 것을 마음에 담고 살아서 잘 지킬 수 있었습니다. 후회 없이 살았습니다. 항상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역에서 좀 더 큰일을 하려고 했었는데, 제가 많이 부족했는지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믿어주고 밀어주었던 분들께 죄송하고 고맙고 그렇습니다. 어떤 결정을 할 때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시는 주변 분들이 있다는 게 살면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울타리 같은 그런 분들이 옆에 계시니 뜻을 못 이루었을지라도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제는 나이도 많으니 그런 일들은 젊은 사람들한테 맡기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봉사를 꾸준히 하려고 합니다.”
김경선 회장님을 압축해서 표현하자면, 중용 제23장의 현대적 해석이 딱 어울리는 사람이다. 중용은 중국 유교(儒敎)의 경전으로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었는데 인간의 본성인 성(誠)에 관한 내용이다.
其次는 致曲이니 曲能有誠이니 誠則形하고 形則著하고 著則明하고 明則動하고 動則變하고 變則化니 唯天下至誠이야 爲能化니라
기차는 치곡이니, 곡능유성이니 성즉형하고, 형즉저하고 저즉명하고 명즉동하고 동즉변하고 변즉화니 유천하지성이야 위능화니라.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 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잣대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삶에 늘 긍지를 갖고 밝은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기에 김경선 회장님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자꾸 모여든다. 좋은 사람들이 마음 모아 만드는 행복한 세상이 거기에 있다. PAJU 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