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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은 1947년7월 미 군정청 소속인 식물학자 미더(E. M. Meader)교수가 북한산 백운대 바위틈에서 자생한 수수꽃다리나무(털개회나무)를 발견하여 종자 12개를 미국으로 보낸다.
1954년 뉴헴프셔 농업시험장에서 종자개량에 성공하게 되어 개량된 꽃 이름을 당시 타이피스트의 성을 따서 “라일락 미스 킴(Syringa Patula Miss Klm)”이라 불러지면서 대량 재배하여 세계시장으로 수출하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어수선하고 배고프던 시절이라 종자고 뭐고 정신은 딴 곳에 팔고 살던 시절이었다. 정신을 딴 곳에 팔고 딴 짓을 하는 것은 요즘도 매한가지이다.
종자전쟁에서 빼앗긴 우리 꽃, 향기 좋고 아름다운 “미스 킴 라일락”은 슬프게도 역수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수수꽃다리에 반한 노천명시인(1911~1957)은 <푸른 오월>의 시가 감미롭다.
“청자 빛 하늘이 / 육모정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여인네 행주치마에 / 첫 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 내 젊은 꿈이 나비와 같이 앉은 정오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 내가 웬일로 무색
하고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속 밀려드는 것을 / 어찌하는 수 없이
눈은 먼데 하늘을 본다 / 긴 담을 끼고 외진 길을 걸으면
생각은 무지개로 핀다.
풀냄새가 물큰 / 향수보다 더 좋게 내 코를 스치고
청머루 순이 뻗어나던 길 섶 / 어디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나는 활나물 홋잎나물 젓갈나물 / 참나물 고사리를 찾던-
잃어버린 날이 그립구나 나의 사람아 /
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
아니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 /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이 모양 내 맘은 / 하늘 높이 솟는다.
오월의 창공이여! / 나의 태양이여!“
-노천명의 <푸른 오월>전문
노천명은 수수꽃다리의 우리이름을 몰라서 라일락이라 불렀는지 아쉬움을 남기는 시이다.
천성이 음치인 나는 노래를 부르는 게 제일 두렵고 싫다. 술잔이 몇 순배 돌리다 취기가 동하면 부르는 애창곡은 <베사메무초>다. 음정 박자가 가관이다. 우리나라가수 현인이 개사를 하여 불렀다, 콧노래로 흥얼거리면서 1절만 적어본다.
“베사메 베사메무초 고요한 그날 밤 /
리라꽃 지던 밤에 베사메 베사메 무초
리라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 다오 /
베사메 베시메무초 리라꽃 같은 귀여운 아가씨
베사매 베사메무초 그대는 외로운 산타마리아 /
베사메 베사메무초 고요한 그날 밤
리라꽃 지던 밤에 베사메 베사메무초 /
리라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
여기에 나오는 ‘리라(Lilas)꽃’은 프랑스어이며 라일락꽃이다.
본래의 <베사메무쵸, Besame Mucho>는 1940년 멕시코 여류피아니스트 콘수엘로 벨라스커스가 작사 작곡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자신은 이 노래를 만들 때까지 한 번도 키스를 해 본 경험이 없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영어로 ‘Kiss me much’로 ‘나에게 키스해주세요’라는 뜻의 로맨틱한 발라드곡이다.
“나에게 키스를 해 주세요 /
나에게 많이 키스를 해 주세요
마치 오늘 저녁이 마지막인 것처럼
나에게 키스를 해 주세요 /
나에게 많이 키스를 해 주세요
난 나중에 너를 잃을 까봐 두려워
널 정말 가까이서 가지고 싶어 /
너의 눈 속에 잇는 나를 보고 싶어
난 내일 아침에는 이미 여기서 멀리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나에게 키스를 해 주세요 /
나에게 많이 키스를 해 주세요
마치 오늘 저녁이 마지막인 것처럼
나에게 키스해 주세요 / 나에게 많이 키스를 해 주세요
난 나중에 너를 잃을까봐 두려워.
미국의 시인 T S 엘리엇(1888~1965, 시인, 비평가)이 1922년에 발표한 장시(長詩)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 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1부 첫줄과 둘째 줄에 있는 시로, 라일락을 키워내서 잔인 한 달이라 하였다. 황무지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직후의 세계와 작가 자신의 황폐한 사생활을 뜻한다. 그러나 엘리엇이 말한 황무지란 전쟁의 황폐와 유혈의 황무지라기보다 서구인의 정신적 불모상태 즉 어떤 소생의 믿음도 인간의 일상에 중요함과 가치를 제공해 주지 못하고, 성(性)이 2세를 얻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한낮 쾌락을 위한 것이 되었고,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도 없는 비극적 상태를 나타낸 시이다. 이 항무지에서 생을 이어가는 길은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표현되고 있다. 엘리엇은 <황무지>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수수꽃다리(Syringa dilatata)는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갈잎떨기나무로 꽃피는 시기는4~5월에 연한 자주색으로 피고 결실기는 9월이다. 수수꽃다리, 정향나무, 털개화나무, 개똥나무 등으로 불리며 통틀어 라일락이라 부른다.
우리조상들은 이 꽃을 따서 말려 향갑이나 향궤에 넣어 두고는 항상 방 안에 은은한 향기가 배도록 하였으며 여인들은 향낭을 만들어 향을 즐기기도 하였다. 수수꽃다리는 동서양을 망라하여 사랑을 받고 있다. 유럽에서 이 꽃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겨울이 가고 5월이 오면 독일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라일락타임이라 하여 축제 분위기에 젖어드는데 아름다운 처녀들이 저마다 라일락 꽃송이를 들여다보고 다닌다고 한다. 이는 라일락꽃은 끝이 넷으로 갈라졌지만 간간이 돌연변이가 생겨 다섯 갈래로 갈라진 꽃을 찾아 삼키면 연인의 사랑이 변치 않는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네 잎 클로버가 행운을 뜻하듯 독일의 아가씨들은 다섯 갈래의 라일락을 찾아 영원한 사랑을 얻고 싶어 했다. 이 다섯 갈래의 꽃을 럭키라일락이라 불렀다. 프랑스에서는 흰 색 라일락은 청춘의 상징이므로 젊은 여인들만이 간직할 수 있는 꽃이라고도 한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만년에 완성한 역작 <부활>에서 귀족청년인 네흘류도프가 하녀인 카츄사를 단 하룻밤 사랑으로 전개되는 내용의 소설이다. 엄청난 고통을 타고 넘어 과거를 극복하고 진정한 사랑으로 부활한다는 줄거리이다. 귀족청년이 카츄사를 유혹하기 위해 라일락을 들고 가는 장면이 있다.
19세기 중반 이후, 빈센트 반 고흐의 라일락을 소재로 그린 그림이 있고, 색채의 마술사 샤갈도 “라일락 속의 연인들”이라는 그림이 있고, 빛의 화가 모네의 그림 중에도 많은 라일락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라일락은 문학의 소재와, 음악과 미술의 소재로 많이 다루어졌다.
숨어 있는 이야기 하나
“어느 영국아가씨가 순정을 다 바쳐 젊은 남자를 사랑하여 순결을 바친다. 어느 날 젊은 남자는 아가씨를 버리고 떠나고 만다. 아가씨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세상을 하직하고 만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슬픔에 빠진 친구가 아가씨의 묘에 라일락을 바쳤다. 그 때의 꽃빛깔은 보라색이었으나 다음날 꽃잎이 모두 하얀색으로 변했다.”
이 이야기의 라일락은 지금도 하트포드셔 마을에 있는 교회공동묘지에 계속 피고 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보라색을 슬픈 색이라 눈에 띄는 곳에는 보라색라일락을 꽂아 두지 않는다. 영국민속에 라일락꽃을 몸에 지닌 여자는 결혼한 후 반지를 낄 수 없는 때를 만나다고 하여 약혼한 후 라일락을 한 송이 보내면 파혼의 뜻으로 통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숨어 있는 이야기 둘
옛날 평화스러운 마을에 우의가 돈독한 두 아이가 살고 있었다. 두 아이는 어느 날 장래의 꿈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한 아이의 꿈은 과거에 급제하여 훌륭한 벼슬아치가 되어 가난한 백성을 위해 헌신하는 관리가 되기를 원했다. 또 한 아이는 구름을 밟고 사는 신선이 되기를 원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두 아이는 훌륭한 청년이 되었다. 한 아이는 청운의 뜻을 품고 한양으로 떠났고, 또 한 아이는 신선이 되려고 깊은 산 속으로 떠났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한양으로 떠난 아이는 열심히 공부를 하여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그는 부임지로 가다가 옛 친구 생각이 간절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신선이 되려고 산으로 오른 친구를 찾아 직접 산으로 올랐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산마루를 넘다가 한 곳에 머무르니 수수꽃다리 향기가 천지사방으로 풍겨주는 것이었다. 땀을 식히며 사방을 살피고 있으려니 어떻게 알았는지 흰 도포를 입은 친구가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두 사람은 수수꽃다리꽃으로 빚은 차를 마시며 그날 밤을 지나간 이야기로 밝혔다.
다음날 아침, 친구와 작별하고 산을 내려온 그가 집에 이르자 자신의 집에서 웬 노인이 나와서 그를 맞으며 “신선을 만나러 가신분의 손자인데, 아직도 우리는 그 분의 생사를 모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신선이 된 친구와의 하루가 아래세상에서 몇 십 년이 된 것이다. 신선이 사는 깊은 산에는 수수꽃다리꽃이 만발하게 피었다고 한다.
수수꽃다리꽃의 향이 너무 향기롭다보니 허구로 전해지는 이야기로 들으면 좋을 것 같은 내용이다. 옆집 마당에서 풍기는 미스 킴의 향기를 몰래 맡아보는 나는 향기도둑이다.
세계품종다양성협약에 따라 식물을 개량한 사람이 특허를 등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우리의 ‘라일락미스킴’을 정원수로 심으려면 로열티를 지불하고 수입하여야하는 서글픈 이름의 우리 꽃이라 부르고 싶다. PAJU 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