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의 선거 결과를 두고 무수히 많은 분석과 설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매우 의외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인지 분석자마다 제각각의 논리를 들이댑니다. 제가 보탤 말이 더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미시적인 분석이나 흥미 위주 또는, 일방의 잘못을 지적하고 마는 분석으로는 이번 선거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앞으로 흐름을 짚어보고 향후 교훈을 삼는 데에 있어서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측면에서 저 나름의 분석을 시도해볼 생각입니다. ◆ 김순현 대표
우선 저는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흐름인 두 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이번 총선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가장 먼저는 ‘불공정’입니다.
한 언론사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서울 서초구에서 당선된 이혜훈 당선자는 현 정부의 경제 정책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소수인 반면 피해를 보는 사람은 다수였다는 것을 유권자들이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결국, 핵심은 이 것일 것이라고 저는 수긍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불공정’입니다. 이런 ‘불공정’함이 선거의 승패를 갈랐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이념들이 있지만 그 이념의 뼈대는 대개 ‘소유’의 문제이고, ‘누가 얼마를 어떻게 갖느냐’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적어도 ‘이념적’으로는 최고봉인 ‘공산주의’에 한때, 그렇게 열광했던 이유도 너나 할 것 없이 ‘공정’하게 ‘소유’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들어서 치러진 여러 번의 선거에서는 인간의 이기적 동기와 사적 소유에 대한 욕망을 끝없이 자극하는 방향으로 선거 캠페인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부자 되세요.”를 외치는 정치꾼들의 현혹에 빠져서, 모두가 부자가 될 것 같은 환상을 겪기도 했습니다.
‘공정’함이나 ‘정의’ 등의 가치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외면하고, ‘먹고사니즘’의 굴레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안 이런 경향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의 속성은 ‘정의’라든가 ‘공정’ 따위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무한대의 자기증식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이른바 ‘헬 조선’이라는 비명을 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인당 GDP가 3만 달러에 육박한다고 하지만, 시급 6,030원의 최저임금으로 의식주를 해결해야하는 ‘청년’들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수저’들의 기득권과 갑질 횡포는 점점 더 심해질 따름입니다. 전세가 월세로 전환됨에 따라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월세를 내야하는 사람들의 절망과 분노는 하늘을 찌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의 결과는 어찌 보면 당연하거나 오히려 모자란 결과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한 가지 키워드는 ‘자존감’입니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의 극심한 혼란 속에서도 경제발전과 민주주의 발전을 양립시킨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민주주의 발전은 가히 놀라울 정도입니다. 과거 권위주의적 정권하에서 외국의 어떤 기자는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남한에서 민주주의를 기다리는 것은 마치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말입니다.
군사정권시절의 민주주의 ‘압살’은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혹독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속에서도 우리 국민들은 끈질긴 투쟁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이루어 냈습니다.
본질적으로는 아직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형식적 민주주의’는 거의 이루었다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국민들은 스스로 이룩한 성과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자존감’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그 궤적을 잃어버렸습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최고 권력은 어느새 ‘최고 존엄’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국민들을 모욕하고, 역사의 물줄기를 되돌리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계속되었습니다.
식민 시대의 아픔을 견디고 권위주의, 군사독재를 온 몸으로 이겨내고 쟁취한 ‘민주주의’의 전통은 이제 거스르기 어려운 큰 흐름이고, 역사의 물줄기는 되돌리기 어려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무도한 권력은 ‘수레바퀴 아래의 사마귀’처럼 무모했습니다. 이번 선거는 그런 흐름을 막아서려는 어리석은 시도에 대해서 국민들이 ‘코웃음’을 쳐버린 것입니다. 국민들의 ‘자존감’을 심하게 상하게 만들고서야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당연한 결과지요.
어릴 적, 장마철 임진강은 그 자체로 거대한 흐름이었습니다. 그 엄청나고 도도한 탁류에는 온갖 것들이 함께 떠내려갑니다.
권력, 이기심, 욕망 모든 것이 다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