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최근에 개봉한 SF영화 <채피>나 <엑스 마키나>를 비롯해 현대 SF 영화의 걸작들에는 언제나 그 작품을 대표하는 로봇이 등장하는데, 영화 <터미네이터>의 살인 병기 T, <스타워즈>의 R2D2, <아이 로봇>의 로봇 군중 들도 바로 그런 존재들이다. 대개 철이나 어떤 특수 재질로 만들어졌고, 인간은 아니며, 감정이나 행동이 어딘가 경직되고 어색한 인조물이지만 점차 스스로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획득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이미지 역시 바로 카렐 차페크의 이 작품 ??로봇??에서 원초적으로 제공되었다.
이렇듯 수많은 SF 작품들의 오리지널 모델인 ‘로봇’에 대해 당신이 상상할 수는 있는 거의 모든 것이 이 작품 속에 녹여져 있다. 인간과 노동, 기계와 인조인간, 현대사회와 대량생산, 그리고 생명과 신의 문제 …… 이 모든 묵시록적 드라마와 미래 사회에 대한 차페크의 뛰어난 예언과 묘사는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된 지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경이롭기만 하다.
백여 년 전에 쓰인 작품인데도, 그동안 우리가 보았던 20세기와 21세기의 과학 발전 및 이에 따른 로봇에 대한 상상력을 이 작품은 이미 모두 담고 있다. 먼저, 로봇은 신을 부정하기 위해 생명체를 만들려던 늙은 로숨의 도전에서 시작된다. 이는 과학이 발전하기 이전부터 있었던 신화나 전설의 상상력을 잇고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로봇의 대량생산을 시도하는 젊은 로숨의 도전은, 과학의 상상력이 이윤을 남기기 위한 산업 생산으로 이어지는 부분으로 볼 수 있다.
R.U.R. 회사에서 처음 만들었던 로봇은 그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고 노동력을 절감시킬 수 있는 일종의 ‘산업용 로봇(생활 로봇)’이었다. 그러다 차츰 전문화된 자기 영역을 갖는 로봇들이 나타나게 된다. 아마 요즘 미국이나 일본에서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대체 노동력으로 다양하게 개발하는 산업용 로봇들이 이 단계의 초보적 수준이 아닐까 싶다. 로봇 생산을 끊임없이 개량하다가 이제는 사람처럼 스스로 학습 능력을 갖고 감정을 느끼는 로봇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인간과 유사한 로봇을 만들려는 과학자의 욕구와 로봇들 자체의 ‘내부 진화’ 과정이 맞물리면서 일종의 ‘안드로이드’가 된다.
인간이 되려는 로봇들의 욕망은 결국 인간처럼 살육하고, 이기고, 정복하려는 욕구로 이어진다. 인간에게 배운 방법으로 인간을 멸종시킨 로봇들 중에서 실제로 남녀의 성 정체성을 갖게 된 한 쌍의 안드로이드는 마침내 인류의 후예가 된다. 현대 과학자들이 예측하는 호모사피엔스의 후예, 곧 ‘로보 사피엔스’의 단계인 셈이다.
이렇듯 『로봇(R.U.R.)』은 20세기 SF 문학에서 나타나는 로봇의 진화 과정과 다양한 주제들을 로봇 이야기의 기원답게 모두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 과학의 발전 양상을 예언하듯 보여준다. 또한, 작품에서 나타나는 로봇과 인간의 관계는 인간과 인간의 불평등한 관계에 대한 또 다른 은유로 읽히기도 한다. 차페크가 언급했듯이 다양한 인간 군상과 사회 현실에 대한 풍자이기도 한 것이다. PAJU 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