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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한마디로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국민은 누구인가? 누구의 눈물부터 먼저 닦아주어야 할까?
다음의 두 가지 주장은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대표적인 두 가지 논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모든 갈등과 대립이 이 두 가지의 논리와 입장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일자리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구조개혁과 중장년 일자리 문제, 자영업 문제 해결 방안 등 이를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수적”
“정치권에서 노동개혁 4법 등 구조개혁 입법을 마무리하지 않는 것은 일자리창출과 경제 활성화를 염원하는 국민적 열망을 외면하는 것이며, 국민과 경제인들의 서명운동에도 불구하고 오직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여 정치논리만 앞세우고 있다” (대한민국 청와대 홈페이지)
“부모의 임금을 깎아서 청년 비정규직을 늘리고 부모의 일자리를 쉽게 빼앗아 자녀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기만적인 정책을 경제 살리기 법안이라고 우기고 있는 정권에게 누가 지지를 보낼 수 있겠는가? 부의 재벌 집중과 소득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재벌 대기업 살리기, '증세 없는 복지' 등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한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는 정권에게 누가 지지를 보낼 수 있겠는가.” (정태석 전북대 교수. 프레시안2016.4.27.)
최근 들어 조선과 해양산업이 심각한 부실에 빠져서 정부의 처분만을 바라는 신세가 됐다.
세계 제일의 조선강국이라며 큰소리치던 때가 불과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부실 덩어리가 돼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마치 근로자들을 자르는 것만이 능사라는 식의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이런 상황에서 정치는 어떻게 기능하고, 누구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하는가. 너무나 당연하다. 조선소에서 뼈 빠지게 노동하고 끝내는 해고당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이 아닌가 말이다.
다 아는 바대로 우리나라 조선소에서는 고품격 유람선인 ‘크루즈선’을 만들지 못하다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조선기술이 ‘세계 제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값싼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을 쥐어짜서 그 점을 밑천삼아 그저 그런 수준의 배들을 만들어 왔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더 값싼 임금의 중국에 밀려서 지금 이지경이 돼버린 것이다.
한 해 동안 배 한척도 수주를 못하는 상황이라면 오늘의 사태는 당연히 예견할 수 있었고, 선제적으로 대책을 세웠어야 할 조선 기업의 임원과 사주들은 수억에서 수 십 억에 이르는 고액 연봉과 천문학적인 배당을 챙겨갔다.
그런데도 ‘구조조정’으로 인한 희생은 오롯이 노동자들이 치러야한다.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은 이리저리 빠져나가면서 노동자들 희생하고, 국민세금으로 ‘공적자금’ 투입해서 회사 살려놓으면 또 다시 과거의 경영자들이 되 찾아가는 것이 우리나라의 ‘구조조정’이 아닌가.
회사 경영할 때 과실을 다 따먹다가, 부실해지면 정부가 책임져주는 이런 구조에서 누가 목숨걸고 경영에 힘쓰겠는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반복되지 않도록 엄격히 감시하고, 공평하게 누리고, 책임도 공평하게 지도록 하는 것이 곧 정치의 영역이고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눈물을 닦아주어야 할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렇고, 청년실업자들이 그렇고, 농민들이 그렇고, 고리대금에 시달리는 서민들이 그렇고, 장사가 안 되서 사업을 눈물로 접어야하는 자영업자들이 그렇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렇고, 세월호 유족들이 그렇고, 엉뚱하게도 영문도 모르고 ‘묻지마 살인’에 죽어야만 했던, 억울하고 불쌍한 영혼들이 그렇다. 그런 만큼 정치가 지고 있는 책무 또한 엄중하다. 새로이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잠도 자지 말고 뛰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