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교육부의 한 고위 관리가 ‘민중은 개, 돼지’라는 표현을 해서 크게 논란이 되었고, 전도양양하던 본인의 처지조차 ‘개, 돼지’로 전락하고 만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야말로 표피적 분노로 당사자를 비난하고 욕하고 했습니다만 돌이켜 살펴 보건데 이런 논란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우리 사회 엘리트들의 의식구조를 들여다본다면 향후에도 끊임없이 일어날 구조적이라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민중을 우매하다고 한 것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 이래로 유구한 것입니다.
우리더러 ‘개, 돼지’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을뿐더러 ‘신분제’라는,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고 말하고 있고, 정치적으로 민주 공화정을 지향하는 나라에서 역사책 속에서나 나올법한 단어를 스스럼없이 내뱉는 저들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를 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지금 그 뿌리를 파헤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과거의 양반 제도에서부터 시작해서 일제의 식민지 시대에 조국을 팔고, 민족을 팔았던 친일부역자들을 철저히 청산하지 못한 아픈 역사, 군사독재와 거기에 기생한 재벌체제에 기초한 세력들이 신자유주의에 기대어서 천민자본주의를 부추긴 결과라는 맥락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 사회를 1: 99의 사회를 만들었고, 그 1%에 끼이기 위해서 99%를 짓밟고 일어서려는 부나방 같은 자들을 양산했습니다.
‘0.1%의 부자들이 하위 90%가 벌어들이는 소득보다 더 많은 소득을 가져간다.’고 일갈했던 버니 샌더스처럼, 우리 사회도 이미 그렇게 돼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개, 돼지’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평생 머리 조아리며 살아야 할까요?
그들이 던져주는 부스러기나 받아먹으면서 말 그대로 ‘개, 돼지’로 살아가야 할까요?
불행하게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런 현실을 타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서글퍼집니다.
우리 사회의 1%들은 그들이 기반 한 물적, 인적 자원을 최대한 확대 재생산하면서 더욱더 공고해지고 심지어는 제도화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것과 ‘흙 수저’ 물고 태어나는 것의 차이로 인해서 그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가 돼버렸습니다.
이러니 ‘신분제’라는 시대착오적인 단어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점에서 ‘노무현’을 생각합니다. 정치적 호불호가 있겠습니다만 그가 ‘기득권 타파’라는 주제를 두고 피를 토했던 주장은 지금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아프게 다가옵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며 밥값을 하며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를 청산하자는 그의 외침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고만두거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의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지금 차례에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 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습니다. 노무현은 ‘권력’ 만을 이야기했지만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라고 본인 스스로 고백한 것처럼, 이 나라의 진정한 권력자는 박근혜가 아니고 삼성의 이재용이나 SK 최태원 입니다. 그러나 매우 다행한 것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체제가 민주 공화정이고 누구에게나 한 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는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돈이 없으니 돈으로 저들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치체제와 정치적 압박을 통해서 저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저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 표의 가치와 효과를 부정하기위해서 교묘한 속임수를 써왔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그렇게 속아왔고, 앞으로도 속을 가능성이 매우 많기는 하지만 더 이상 ‘개, 돼지’로 살지 않으려면 이 한 표의 가치를 스스로 깨닫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한 표 한 표가 돌멩이가 되어서 저들에게 날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개, 돼지’의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표’ 있는 자들의 끊임없는 자각. 유일한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