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장군묘에서
성지오
파주에서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나는, 올해는 윤관장군 묘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900여 년 전 여진족을 무찔렀던 윤관의 이야기를 하며 일할 수 있으니 더 없이 감사하다. 설날이 지나고 며칠 후, 몇 사람이 술과 과일 등 제물을 들고 묘소를 찾아왔다. 후손이냐고 물어 보니 윤관 장군의 몇 대손 무슨 파라고 한다. 그래서‘자랑스러운 선조를 두셔서 좋으시겠어요.’했더니 얼굴들이 더욱 환해진다.
윤관 묘는 우리나라에서 몇째 안 가는 명당이라 하여 풍수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많이 찾아온다. 어떻게 생긴 곳이기에 그런지 나름 궁금하여 이곳에 근무를 하게 되자 뒷산을 한번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아래서 볼 때는 높아 보였는데 조금 올라가니 정상이 나온다. 뒷산이 소가 누운 듯 편안한 형상이라더니 그런 것도 같고, 그 아래 살짝 솟은 조산과 좌청룡 우백호도 뚜렷해 보인다. 게다가 옛 의주로가 지나는 길 건너에는 둥그런 밥상처럼 생긴 앞산까지 있어 전에 대충 들어 두었던 풍수로 보아도 좋은 터 인 것 같다.
그런 연유인지 이곳은 윤관장군의 후손이 아닌 사람들도 많이 찾아온다. 그 중 어느 여인은 묘소 입구에서부터 묘에 올라가 그리고 내려와 홍살문 밖에서 동서남북 돌아가며 인사를 하고, 묘소를 향해 다시 고개를 숙이고 일어설 줄 모른다. 원색 옷에 액세서리를 치렁하게 두른 저 여인은 무엇이 저토록 간절한 것일까.
아직 찬바람이 부는 어느 주말에 찾아 온 한 가족이 있었다. 아빠 엄마와 묘소로 올라갔던 예닐곱 살 쯤 되어 보이는 녀석이 잔디밭을 굴러 내려온다. 답사체험으로 온 아이들도 묘에만 올라가면 제 길로 내려오지 않고 여기저기로 굴러 내려오곤 한다. 구르고 굴러 기개가 커지고 가슴이 커져 갈 수 있다면 한번쯤 이런 곳에서 굴러보아도 좋겠지. 그 녀석들은 삼천갑자 동박삭이가 삼년고개에서 여러 번 굴러 소원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고, 그렇게 어른 아이 다 좋아하는 곳이니 이곳은 분명 명당 터 일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묘소아래 잔디밭에 무엇인가가 파 놓은 흙무더기들이 하나 둘 늘어나는 것이 보였다. 두더지나 땅강아지가 파 놓은 것 같았는데, 관리소에서는 고장 난 선풍기 날개를 뜯어 바람개비처럼 설치를 하는 등 나름대로 퇴치 작전을 벌이고 있다. 그것이 돌면 땅이 울려 더 이상 땅을 파지 않는다는데, 그 모양이 재미있기도 하고 파 헤쳐진 흙무더기가 고려의 변방까지 쳐 들어와 기회를 엿보는 여진의 무리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여진을 그냥 상대하다간 안 되겠다싶어 별무반을 만들어 적들을 몰아내고 9성을 쌓았던, 윤관장군의 기개의 마음을 생각해 보자니 이런 글이 떠올랐다.
두더지 파 놓은 것을 산이라 하랴
적들의 무리인 듯 솟아 오른 흙무더기
뽕나무 활과 별무반의 기상으로 모두 쳐 없애리라
다음은 여진을 4차례나 무찌르고도 패장이라는 모함을 받아 적진에서 돌아오다, 임금을 만나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 머물다 세상을 떠난 심정으로 써 보았다.
내 언제 9성 쌓은 그 기상만 산이라 했더냐
여진의 무리처럼 파 헤쳐진 흙무더기, 산 아니라 했더냐
선춘령 어드메뇨, 먼지처럼 흩어져간 두만강 너머의 꿈이여
오늘날의 압록강과 두만강은 남북이 가로막혀 멀게 느껴진다. 그러나 유난히 그 물빛이 푸르다는 두만강 너머까지가 우리의 땅이었다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선춘령, 공험진등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넓어지는 것 같다. 오늘날 우리의 역사는 일제의 지배하에 썼던 대로 윤관의 9성을 함흥일대설로 줄여서 말하는데, 고려사 지리지나 세종실록지리지에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아직도 바로잡지 않으니 답답하다.
이제 우리가 차지했던 옛 땅을 찾아 올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자라는 아이들에게 저기 두만강 너머까지가 우리 땅이었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요즈음 일본은 문헌에 어엿이 적혀있고 대한민국 국민이 살고 있는 땅을 자기네 것이라 우기더니, 교과서에 확대해 싣기까지 했다. 그것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100년 후를 겨냥한 작태라니 우리 모두 정신 바짝 차리고 지켜 내야 할 일이다.
많은 날들을 전쟁터에서 보내며 나라를 위한 일을 하고도 패장이라는 모함을 받고 세상을 떠난 윤관, 역사는 반복 된다하고 역사를 보면 미래가 보인다고도 한다. 고조선 때 부터 차지하고 있던 우리 땅을 찾아온 명장을 패장으로 몰았던 역사의 되돌림이, 이 조그만 한반도를 둘로 쪼개어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그에게 다시 관직을 제수하지마는 끝까지 사의를 표하며 눈을 감으니, 세상사 헛되고 헛됨을 뼈저리게 느끼며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신하들의 힘에 밀려 패장이라는 모함을 예종이 끝까지 풀어주지 못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일수 있었을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묘소를 찾아오고 사랑을 받는 것이 꼭 교과서나 위인전등에 실려 있어서만 일까. 아마도 오늘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힘없는 대한민국에 진정 나라를 위하다 죽어간 영웅이 그립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 파주문화관광해설사
- 파주향토문화연구소연구위원
- 파주문협부회장. 파주문학회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