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눈앞 두고 했던 약속, 지키려 합니다.”
‘사랑의 밥 차’ 운영하고 있는 채성태 대표.
“외식을 못하시는 어르신들이나 장애인분들에게 ‘따뜻한 밥’ 대접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사랑이 가득 담긴 밥 차’를 몰고 전국을 누비면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나 장애인들이 원하는 음식을 조리해 맘껏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사)사랑의 밥 차(이하 사랑의 밥 차)’ 채성태 대표(49.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 예술인 마을).
‘사랑의 밥 차’는 채 대표가 서울 한남동 이태원에서 ‘해천’이라는 일식집을 운영하던 14년 전부터 운영해오고 있는 봉사단체다. 거동이 불편해 외식문화를 잘 접하지 못하는 장애인들과 홀로사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지어주고, 공연을 통해 웃음을 주기 위해 결성한 모임이다.
채 대표는 일식집을 하며 얻은 수익금 중 매월 1천만원 가량의 사비를 들여 이 ‘사랑의 밥 차’를 운영했다. 초밥서부터 돈가스 자장면, 하물며 랍스타 구이까지 지역에 상관없이 전국을 다니면서 그들이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만들어 줬다.
따뜻한 음식 나눠드려야겠다 생각에 밥 차 시작
‘사랑의 밥 차’는 채 사장이 동네에서 잘 알고 지내는 지인의 소개로 한 장애인 시설에 전복죽을 만들어 갖고 간 것이 계기가 돼 시작했다.
“죽을 만들어 갔더니 식어서 미지근한 거예요. 대접을 하면서도 미안하더라구요. 그런데도 장애인들은 물론 시설을 운영하는 목사님도 전복죽은 처음 먹어본다면서 너무 좋아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생각했죠.”
처음에는 가난하고 영세한 시설에서 요리를 해 대접하다 보니 비위생적이라서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즉석에서 따뜻하고 위생적인 음식을 나눠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생각해 낸 것이 ‘사랑의 밥 차’였다.
“식당을 하는 요리사 친구들과 동네 친구들, 고객으로 알게 된 연예인 친구들 몇몇에게 제안했더니 모두들 흔쾌히 동참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1억 가까이 들여 대형트럭 화물칸을 개조해 싱크대는 물론 냉장고, 물통, 가스설비까지 갖춘 전천후 이동 주방을 만들었습니다.”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한 친구가 차 할부 값을 도와주고, 영화배우 정준호씨 등 연예계의 친구들이 힘을 보탰다.
‘사랑의 밥 차’ 연예인 봉사자만 100여명에 달해
그렇게 시작한 ‘사랑의 밥 차’에는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연예인들이 많다. 우선 사무국장이 영화배우 겸 탤런트인 전진우씨(41. 파주시 검산동)다. 탤런트인 전무송씨의 아들이기도 하다.
또 영화배우 정준호씨를 비롯해 탤런트 이일화씨, 미녀마술사 오은영씨, 가수 고한우, 이범학, 심신, 유승혁씨, 웃찾사 개그맨들 등 부정기적 참여자까지 합하면 연예인 봉사자들이 100여명에 이른다. 또 정치인들만 제외하곤 모든 분야의 전문직 봉사자들 많다.
때문에 ‘사랑의 밥 차’ 운영을 하다가도 미니 콘서트가 벌어지기도 한다. 또 낡고 노후 된 시설의 집 고쳐주기 봉사가 이뤄지기도 한다.
‘사랑의 밥 차’는 주로 주말에 움직인다. 특별한 경우 평일에도 달려가지만 봉사자들의 부족으로 대부분 주말에 이뤄진다.
채 대표와 전 사무국장은 주말이면 어김없이 차를 몰고 서울과 경기도는 물론이고 멀리 제주도까지 지역을 마다않고 전국을 누빈다. 지금까지 그가 찾은 시설만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양양산불과 태안기름 유출 사고 현장에서도 봉사
‘사랑의 밥 차’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접수를 받고 지역을 선정해 움직인다. 대형 화물차로 이동하다 보니까 때론 1박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보람도 많다. “강원도 양양산불과 평창군 진부면 수해 때 밥 차 운영했어요. 한식 쉐프 후배와 함께 차에서 스티로폼 깔고 자면서 새벽까지 고립된 주민들과 함께 밥 차를 운영하면서 그들과 아픔을 같이 하기도 했죠.”
태안 기름유출 사고 때도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하루만 하자고 간 것이 60일 간 그곳에서 ‘밥순이’를 했다.
“처음에 하루만 하고 오려다 기업을 하는 후배로부터 ‘어디냐’는 물음과 함께 ‘통장에 1000만원 넣을 테니까 그 돈 다 쓸 때까지 올라오지 말라.’며 1천만원을 통장으로 보낸 거예요. 그래서 10일을 더 했는데 이번엔 태안군수가 ‘가면 어떡하느냐. 가면 안 된다’며 간곡히 부탁하는 바람에 뿌리치지 못하고 60일간 밥 차 봉사를 했죠(웃음)”
“악취를 맡으면서 온 몸에 기름칠을 한 주민들 보니까 ‘우리는 고생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밥을 퍼 드리는데 주민들과 봉사자들이 ‘고맙다’고 하는 말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이런 것이 보람이구나.’ 했죠.”
‘사랑의 밥 차’는 국내에서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캄보디아를 찾아 장애인들에게 의수의족과 휠체어를 지원하고 열악한 환경의 장애인을 둔 가정에게는 희망의 집을 지어주고, 쌀도 지원했다.
어린이들에게는 학용품과 옷들을 선물하기도 했다. 장애인, 혼열인과 함께 히말라야 원정을 다녀오기도 했다.
교하지역에서 함께 할 봉사자가 꼭 필요합니다.
‘사랑의 밥 차’ 사무실은 파주시 숲 속 노을길 23번지(교하 동패동 588-2)에 있다. 그러나 정작 주변에 봉사자들이 없다. 때문에 밥 차 봉사를 하고 파김치가 돼 돌아오면 뒷정리도 채 대표와 전 사무국장의 몫이다.
“지역에서 봉사하실 봉사자 분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무실에 자주 와 주셔서 정리도 도와주고 식사도 같이 하면서 ‘이야기 터’가 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웃음).” 전진우 사무국장의 웃음 섞인 당부다.
요즘은 ‘사랑의 밥 차’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채 대표가 음식점을 그만두면서 수입이 없기 때문이다. 채 대표는 매일 동대문 쪽으로 밥 차를 끌고 나간다. 평일에는 그곳에서 국수장사를 해 조금의 돈을 번다. ‘사랑의 밥 차’ 운영비를 벌기 위해서다.
얼마 전 개인 사비로 운영하던 ‘사랑의 밥 차’를 사단법인화 했다. 현재 3대인 차도 8~16대로 확충할 야심찬 계획도 세우고 있다.
요즘 ‘사랑의 밥 차’ 홈페이지와 카페를 통해 ‘와 달라’는 곳이 너무 많아 걱정이라는 채 대표는 경기도 안성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유도를 한 공인 4단의 유단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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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배 사고로 죽을 뻔 ‘새 삶 살겠다.’ 다짐
인터뷰 첫 머리에 ‘따뜻한 밥 대접해 드리려 했다.’고만 계기를 밝힌 채 대표는 인터뷰가 끝날 즈음, ‘사랑의 밥 차’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또 있었다고 털어놨다.
1996년 겨울, 잊을 수 없는 죽을 뻔 한 큰 사고가 있었다고 했다. 당시 ‘목숨만 건질 수 있다면 새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는 그 동안 번 돈으로 사 두었던 고깃배를 타고 충남 태안으로 낚시를 떠났다. 그런데 바닷바람에 그만 배가 뒤집히며 함께 갔던 일행들이 바다로 추락했다. 자신도 모르게 ‘살려만 주신다면, 꼭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고 기도했다.
이날 채 대표와 다른 한 사람만 살아남고 모두 익사하고 말았다. 벌어놓은 돈 다 날리고 그는 죽다 살아난 그곳에 횟집을 차렸다. 전복을 따서 약재를 섞어 만든 요리는 불티나게 팔렸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와 이태원에 ‘해천’이라는 ‘전복요리 전문 식당’을 차렸다. 매출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올라가면서 요릿집이 잘 됐다. 명망가 단골들이 늘어났다. 장사가 불티나면서 죽음 앞에 ‘착하게 살겠다.’ 던 굳은 맹세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그러던 1998년, 지인 하나가 ‘고양시 벽제 어르신 수용시설에 자원봉사를 가는데 전복죽 좀 끓여 달라’고 했다. 마침 쉬는 날이라 50인분 만들어서 따라갔다. 그런데 가보니 전복죽 데울 가스레인지도 없는 것이었다.
어르신들은 차가운 전복죽을 맛있다고 드셨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자기가 죽어갈 때 뭘 기도했고 뭘 맹세했었는지를...
망치로 세게 한 대 맞은 듯 한 뉘우침과 함께 남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된다. ‘사랑의 밥 차’가 시작된 또 다른 계기다.
오늘도 채 대표와 전진우 사무국장은 파주에서 서울을 오가며 ‘사랑의 밥 차’ 운영비 마련을 위해 동대문에서 국수를 팔고 있다.